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 KAIST 어디로 가나

최수문 기자<경제부>

18일 오전9시50분 서울 강남의 모호텔. 로버트 러플린 KAIST 총장이 임시로 마련된 기자회견장에 당초 계획보다 20분 늦게 나타났다. 아침에 열린 KAIST 이사회 결과를 설명하기 위해서다. 러플린 총장은 이사회에 ‘KAIST 비전 2005’로 이름 붙여진 학교 발전 방안을 보고하고 승인받기로 돼 있었다. 마이크 앞에 앉은 러플린 총장은 전혀 뜻밖의 대답을 했다. 이사회가 검토할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이유로 발전 방안 승인을 보류했다는 것이다. KAIST는 아침부터 허둥거렸다. 이사회 회의가 예상보다 오래 걸렸고 KAIST측은 발전 방안 보도자료를 미리 배포했다가 서둘러 회수하기도 했다. 러플린 총장은 “이사회가 비전안을 무시하고 다른 의견을 제시한 것은 아니다”고 강조하고 “비전의 주요 골자가 바뀌어서는 안된다. 이사회가 추가 검토시간을 갖기로 한 만큼 수주일 내에 승인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해명했다. 이사회가 발전 방안을 보류한 것은 상당한 의구심을 불러 일으켰다. KAIST는 그동안 학교에서 제안한 발전 방안의 세부내용을 과학기술부와 충분히 협의했고 학교 예산을 늘이는 것에도 원칙적인 의견 일치를 봤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KAIST는 현재 900억원인 연간 정부지원(전체 예산 2,600억원)을 1,100억원으로 200억원 늘이는 안을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러플린 총장이 돈 문제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다는 점에서 발전 방안은 정부의 동의를 받은 셈이다. 이날 제안은 교과과정ㆍ교수진ㆍ인프라 개혁 방안을 포함했다. 이사회의 행동에 대해 다양한 해석이 나왔다. 일부 이사들이 러플린식(式) 개혁에 딴지를 걸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지만 반대로 당초 기대보다 개혁의 수준이 낮아 보완을 요구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러플린 노벨상 수상자가 KAIST 총장으로 취임한 지 9개월째. 총장과 정부ㆍ이사회의 석연치 못한 행동으로 KAIST의 혼돈은 계속되게 됐다. 러플린 총장은 이날 오후 모든 것을 뒤로 하고 미국으로 떠났다. 사적인 방문이란다. 그는 오는 4월14일에야 귀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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