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란죄 혐의를 받고 있는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 집행이 임박하면서 서울 용산구 관저 앞이 아수라장으로 돌변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윤 대통령 체포에 나설 것이라는 소식에 진보·보수단체 지지자들이 대거 몰려와 ‘일촉즉발’의 상황이 벌어졌다. 지지자들은 ‘윤석열 체포’ ‘탄핵 무효’ 등 구호를 외치며 상대 측을 향해 고성과 욕설을 내뱉고 몸싸움까지 벌이는 등 관저 앞이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2일 오전 성조기와 태극기를 든 보수단체 관계자들은 용산구 한남초등학교 인근에 집결해 “수사기관이 관저 안으로 진입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외쳤다. 윤 대통령을 수사하고 있는 공수처와 경찰 국가수사본부가 공동으로 구성한 공조수사본부가 기한 내인 이달 6일까지 한남동 관저로 진입해 윤 대통령의 체포영장 집행을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에 보수단체들이 일제히 현장으로 몰려온 것이다.
시위대는 차량 한 대 한 대가 관저에 접근할 때마다 예민한 반응을 보였다. 일부 참가자는 경찰에 “제발 문을 열어달라.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며 읍소하기도 했다. 특히 보수단체 관계자들은 전날 밤 윤 대통령이 직접 손편지를 통해 끝까지 싸우겠다는 의지를 밝히면서 더욱 고조되는 모습을 보였다. 한 지지자는 “윤 대통령이 불순 세력 척결에 대한 강한 의지를 밝힌 만큼 우리도 더욱 뭉쳐서 싸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도 이날 변호인을 통해 “대통령은 하루 24시간을 오직 국가와 국민, 민생만을 생각하시는 분”이라며 “대통령을 꼭 지켜주실 것을 간곡히 부탁한다”는 내용의 옥중 서신을 공개해 지지자들의 집결을 더욱 부추겼다.
이에 맞서 진보단체들도 현장에 속속 도착했다. 진보 측 지지자들은 ‘윤석열 탄핵’ ‘윤석열 체포’ 등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윤 대통령의 체포를 촉구하는 구호를 외쳤다.
보수단체와 진보단체가 한 장소에 모이기 시작하면서 이내 관저 앞은 싸움판으로 돌변했다. 각 단체는 서로에게 고성과 욕설을 내뱉었다. 한 윤 대통령 지지자가 진보단체를 향해 “벌레 XX, 빨갱이 XX”라고 소리를 지르자 진보단체 측도 “얌전히 체포나 당하라”며 맞받아쳤다.
곳곳에서는 물리적 충돌도 벌어졌다. 한 보수단체 참석자가 경찰이 조성한 저지선을 밀면서 반대 측 여성 참가자가 밀려 넘어지기도 했다. 상황이 발생하자 양측은 또다시 서로를 향해 “왜 밀치냐” “누가 거기 서 있으라고 했냐”며 욕설에 가까운 고성을 질러댔다.
한 보수단체 참가자 노인은 휴대폰으로 진보 측 여성을 촬영하다 기기를 빼앗기자 “내놓으라”고 외치며 멱살을 붙잡고 흔들었다. 한 남성은 반대 측 피켓 더미를 들고 도망가다 붙잡혀 한바탕 육탄전을 벌이기도 했다.
경찰은 현장에 기동대 6개 부대(400여 명)를 투입해 질서유지에 나섰다. 경찰은 진보 측과 보수 측 집회 구역을 나누고 상호 간 출입을 할 수 없도록 바리케이드를 설치했다. 일각에서 경찰기동대가 윤 대통령 체포영장 집행에 투입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오자 경찰 관계자는 “체포영장 집행에 기동대를 투입할 계획이 없다”며 “관저 앞이 혼란스러운 상황이라 질서유지를 위해 기동대를 배치했다”고 밝혔다.
경찰의 제지로 소강상태에 접어든 한남동 앞은 오후가 되자 한 차례 더 소란이 일어났다. 보수단체 지지자 50여 명이 공수처의 진입을 막겠다며 관저 앞 도로에 스크럼을 짜고 드러누웠다. 경찰은 관저 앞 도로는 집회 신고 장소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세 차례 자진 해산을 권유했다. 그러나 보수단체 측이 바닥에 누운 채 “절대 못 나간다”며 버티자 경찰은 두 차례 경고 후 강제 해산에 나서 30여 명을 끌어냈다. 이 밖에 보수 측 집회 과정에서 지지자 2명이 한강진역 인근에서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경찰에 현행 체포되기도 했다. 보수단체 측은 경찰의 제지가 불법이라며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이날 오후 4시 30분 기준 경찰 비공식 추산 6000명이 한남동에 모였다. 보수 측이 이날부터 체포영장 집행 기한인 6일까지 매일 관저 앞에 집회 신고를 해놓은 만큼 한남동 앞은 당분간 집회로 계속 몸살을 앓을 것으로 보인다.
진보단체 측도 같은 날까지 ‘윤석열 즉각 체포 촉구 긴급 행동’ 집회를 이어간다. 민주노총은 3일과 4일에 거쳐 1박 2일 집중 투쟁을 벌이겠다고 밝혔다.
주말에는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집회가 열릴 예정이다. 윤석열퇴진비상행동은 4일 오후 4시부터 광화문에서 탄핵 찬성 집회를 개최한다. 집회 신고 인원은 3만 명이다. 자유통일당 또한 같은 날 오후 3시부터 광화문에서 탄핵 반대 집회를 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