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95세에도 붓 놓지 않았던 '한국의 피카소'

원로화가 김흥수 화백 별세

야수·입체·표현파 두루 섭렵하고 추상·구상 조화 '하모니즘' 창시

40년대 그린 '누드화' 철거되기도

휠체어 의지한 채 예술혼 불태워

'한국의 피카소'라 불린 원로화가 김흥수 화백이 9일 오전3시15분께 서울 종로구 평창동 자택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5세.

김 화백의 유족은 이날 "새벽에 잠깐 일어나 물을 드시고서 얼마 뒤 돌아가셨다"며 "갑작스러웠지만 그래도 편안하게 가셨다"고 전했다.

고인은 지난 1919년 함경남도 함흥에서 태어나 1940년 동경미술학교에 수석 입학했고 한국전쟁 중 종군화가로 일했다. 해방 후 1952년 서울예술고등학교 미술과장, 서울대 미술대학 강사를 지냈다. 당시까지는 다분히 구상적 양식에 바탕을 둔 '향토애적 주제'로 인물이나 정물에 관심을 뒀다. 그러나 1955년 프랑스 파리로 유학을 떠나면서 '누드'가 주요 주제로 떠올랐고 이후 오랫동안 그의 작품을 지탱하게 된다.


김 화백은 파리의 아카데미 드 라 크랑크 샤브마에르에서 회화를 연구하는 등 7년간 프랑스에 머무르며 야수파·입체파·표현파 등을 두루 섭렵했다. 이어 1977년에 김 화백은 추상과 구상의 조화를 꾀하는 '하모니즘' 미술을 선언하며 국내 화단에 새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하모니즘 미술은 여성의 누드라는 구상적 요소와 기하학적 도형으로 된 추상화를 대비시켜 그리는 식으로 이질적인 요소들을 조화롭게 꾸며 예술성을 끌어내는 독특한 조형주의 화풍이다. 고인은 당시 '조형주의 예술의 선언'에서 "음과 양이 하나로 어울려 완전을 이룩하듯 사실적인 것과 추상적인 두 작품세계가 하나의 작품으로서 용해된 조화를 이룩할 때 조형의 영역을 넘는 오묘한 조형의 예술세계를 전개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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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김 화백은 미술계 밖에서도 관심을 끌었다. 1940년대부터 그린 '누드화' 때문에 풍기문란으로 전시장에서 철거되는 일도 겪었다. 1992년에는 당시 덕성여대 제자였던 42세 연하 장수현씨와 결혼하면서 세간에 화제가 됐다. 하지만 김흥수미술관장이었던 부인은 2012년 11월 먼저 세상을 떠났다.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인 김 화백은 몸이 불편해 휠체어에 의지하면서도 예술혼을 불태워 최근까지도 붓을 놓지 않고 작품활동을 계속했다고 알려졌다.

고인의 외손자인 영화 '풍산개'의 전재홍 감독은 "지난해쯤 할아버지가 '지금에야 머리가 맑아졌고 미술에 대해 알 것 같은데 90대 노인이 돼 버려서 생각대로 못 하는 게 화가 난다'는 말씀을 했다"고 전했다.

유족으로는 3남1녀가 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고 장례는 5일장으로 치러진다. (02)2072-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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