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80년대 유럽의 스피드광을 열광하게 만들었던 사브(Saab). GM에 피인수된 후 정체성을 잃고 카 마니아의 시야에서 다소 멀어졌던 사브가 스포츠형 세단 9-3의 부분변경 모델을 내놓으며 새롭게 다가왔다. 지난해 말 국내에 소개된 뉴 사브 9-3 벡터와 에어로 모델은 2002년 출시된 2세대 모델을 무려 2,157군데나 개량한 새 버전이다. 화려했던 명성에도 불구하고 국내 시장에서는 그다지 눈길을 끌지 못했던 사브를 뉴 9-3 벡터를 통해 접했다. 뉴 9-3의 외형은 과거와는 확연하게 달라졌다. 첫인상에서 예전 모델과 다른 날카로운 야성미를 느꼈다. 눈썹처럼 가느다란 라이팅 존을 적용한 헤드램프에서는 날렵한 야수의 눈빛을 연상할 수 있었다. 고성능 스포츠 세단으로서의 날카로운 이미지를 부각시킨 것이다. 전체적으로는 프런트와 리어 스타일링이 보다 스포티하면서도 역동적인 느낌이 전해졌다. 시동을 켜자 중저음의 엔진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이내 조용해지면서 조련사의 명령을 기다리는 맹수의 숨결이 밀려왔다. 가속페달을 지긋이 밟으며 주차장을 빠져나올 때는 간결하면서도 탄력 있는 스타트와 매끄러운 움직임이 인상적이었다. 고속 주행에서는 폭발적인 터보엔진의 성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시속 90㎞에서 급가속과 추월을 거듭하는 동안 속도계는 순식간에 150㎞를 넘어서고 있었다. 가속페달의 응답은 빨랐다. 또 페달을 밟으면 밟는 대로 뻗어줬다. 속도가 올라도 차체와 엔진 소리에서 전해지는 진동과 소음은 중저속 주행 때와 별반 다를 게 없었다. 뉴 사브 9-3의 공기저항계수는 0.28로 주행 때 양력 발생을 줄여 고속 주행의 안정성을 향상시켰다는 게 GM코리아의 설명이다. 뉴 사브 9-3는 ESP(차체 자세 제어 프로그램)와 강력한 브레이크 어시스트, EBD(전자제동력 배분 제어), 코너링 브레이크 컨트롤 등 운전자 중심의 주행안전 시스템을 갖춰 강력한 터보엔진의 성능을 보다 안전하게 만끽할 수 있도록 보조하고 있는 점도 특징이다. 고속 주행 중 편의장치 조작도 용이했다. 계기판과 센터페시아가 운전자를 향해 설계돼 항공기 조종석(Cockpit)처럼 손을 뻗는 자리에 버튼이 위치하기 때문이다. 사브가 BMW와 마찬가지로 항공기 회사에서 출발했다는 점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또 뉴 사브 9-3 벡터에는 기존 리니어 모델에는 적용되지 않았던 프런트 시트 메모리와 스포츠 시트, 17인치 휠 등이 기본으로 장착됐다. 하지만 가격은 리니어(3,990만원)나 아크(4,595만원)보다 오히려 낮은 3,690만원으로 국내 고객에게 한발짝 더 다가서게 됐다. 다만 최근 2,000㏄ 콤팩트급 고성능 차량들이 국내 시장에 밀려들어오는 상황에서 브랜드 인지도가 낮은 사브가 뉴 9-3 시리즈로 국내 소비자의 눈길을 얼마나 끌지는 미지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