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약시장의 주도권이 바뀌고 있다. 지난 2년간 공급자인 주택건설사가 쥐고 있던 분양 주도권이 수도권과 지방에서 3순위 미분양이 속출, 이젠 수요자인 청약자가 장악한 상황으로 역전됐다. 특히 서울 동시분양은 2년 만에 무려 300가구가 넘는 3순위에서 조차 미분양이 연속 발생, 청약시장이 `공급자 우위`에서 `수요자 우위`로 빠르게 재편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실제 계약률이 또 다른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1순위 청약을 마감했다 해도 초기 계약률이 70% 안팎에 불과하다는 점을 감안할 때, 3순위 미분양 단지들의 경우 계약률은 분양물량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사례가 속출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수요자와 공급자간에 `분양가`에 대한 보이지 않는 치열한 줄다리기가 전개되고 있다. 체감분양가가 높다고 느끼는 수요자들은 “이제 분양시장 주도권을 쥔 만큼 더 기다리겠다”며 느긋한 자세다. 반면 공급자인 주택업계는 “분양시장이 고비용 구조가 정착된 만큼 수요자가 원하는 만큼의 분양가 인하는 없다”고 버티고 있다.
◇300가구 이상 3순위 미달, 2년 만에 발생 = 지난해 11차 332가구가 3순위에서 미달된 데 이어 12차에서도 2순위에서 523가구가 미달, 3순위에서도 대규모 미달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이 같은 현상은 2000년 이후 2년 만에 처음이다.
2000년에는 1순위에서 1대1의 청약률만 달성해도 `성공적인`분양을 한 것으로 인식됐다. 3순위에서도 수백가구 미달은 일상화됐던 것. 실제로 2000년 12월 치러진 11차 동시분양은 3,191가구 중 428가구가 3순위에서 미달됐고 10차 역시 2,782가구 중 232가구가 3순위에서 미달되는 미분양 사태가 이어졌었다.
하지만 2001년 이후 분양시장이 회복기미를 보이면서 3순위 미달 사태는 12차례 중 4차례만 발생했다. 더구나 3차례는 모두 상반기에 나타나 하반기 이후 분양시장은 이전과는 딴판의 과열양상을 띠기 시작했다. 또 3순위 미분양물량도 4차 201가구를 제외하면
▲1차 22가구
▲2차 23가구
▲11차 28가구 미달에 그쳤다. 청약시장의 주도권이 주택건설사 즉 공급자에게 넘어가기 시작하게 된 전환점이 됐던 것.
2002년 이후 청약시장은 수백대 1의 경쟁률이 예사롭지 않게 나타났다. 3순위 미달물량도 2002년은 세 차례, 총 19가구에 불과하면서 분양시장 주도권은 주택업계가 쥐게 됐고 2003년에는 평균 분양가가 아파트 매매가를 추월하는 사태까지 발생하게 됐다.
◇청약자 중심 시장, 분양가 인하 견인할까 = 청약시장의 주도권을 누가 쥐냐에 따라 분양가는 다른 양상으로 나타났다. 즉, 주택업계가 분양시장 주도권을 쥐게 된 2001년 하반기 이후 분양가는 빠른 속도로 올랐다. 2000년 평당 688만원 선이던 서울지역의 동시분양 평균 분양가는 3순위 미달 물량이 줄면서 2001년에는 평당 730만원으로 소폭 뛴다. 하지만 분양시장 주도권을 주택업계가 쥐면서 2002년에는 861만원으로 급상승하고 급기야 2003년에는 평당 1,082만원으로 전년도에 비해 평당 200만원이 급등하게 됐던 것. 특히 2003년의 평균분양가는 입주 3년 이내 아파트의 평균 매매가 1,077만원 보다 높았고 또 평당 2,000만원 안팎의 아파트가 예사롭지 않게 등장, `분양가 착시현상`을 불러일으켰다.
권불십년, 이제 청약시장 환경이 달라졌다. 미달물량이 11ㆍ12차에서만 무려 1,000가구에 육박하고 있는 것이다. 청약자가 분양시장 주도권을 쥐면서 시장에 의한 분양가 인하 압박을 가하고 있는 것. 더구나 수요자가 느끼는 `체감분양가`는 여전히 높아 공급자와 수요자의 한판 줄다리기가 계속되는 중이다. H건설 임원은 “팽팽한 줄다리기는 한동안 계속될 것”이라며 “그렇다고 분양가가 올랐던 속도만큼 인하속도는 빠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철균기자 fusioncj@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