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여론몰이식 변론권 침해 도 넘었다

부산저축銀 피고인측 변호인 피해자측 반발에 변론 중단<br>"피 같은 돈 잃은 마음 알지만 인권보장 대원칙은 지켜져야"

부산저축은행 피해자들이 지난 5월26일 박연호 부산저축은행 회장 등의 변호를 맡은 서울 대치동 법무법인 바른 사무실로 진입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경찰과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서울경제DB

"누구든지 체포 또는 구속을 당한 때에는 즉시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갖는다. 다만, 형사피고인이 스스로 변호인을 구할 수 없을 때에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가가 변호인을 붙인다." 우리나라 헌법 제 12조 4항에서 정한 우리 국민의 보편적 권리다. 변호인은 이에 따라 자신을 선택한 의뢰인, 즉 피고인을 대변해 법정에 선다. 설령 그 상대가 인륜을 넘어서는 파렴치한 범죄를 저지른 인물이라도 이 원칙은 변함이 없다. 보편적인 인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대원칙 때문이다. 변호사 윤리장전에는 '변호사는 의뢰인이나 사건의 내용이 사회 일반으로부터 비난을 받는다는 이유만으로 수임을 거절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저축은행 사태 파장이 확산되면서 '변호사의 변론권'이 새삼 논란이 되고 있다. 지난달 말 열린 부산저축은행 주요 피의자 첫 공판 이후 부산저축은행 대주주와 임원들의 변론 받을 권리가 또 다시 도마에 올랐다. 첫 공판이 열린 5월 26일 오후. 박연호 부산저축은행 회장 등의 형사재판이 끝난 후 부산저축은행 예금 피해자들은 비상대책위원회와 함께 주요 피고인 변호를 맡은 법무법인 바른으로 찾아가 "변론을 그만두라"라며 집단 시위를 벌였다. 이날 시위대가 물러가고 몇 시간 후 바른은 결국 피고인들과 비공식적으로 합의했던 사임안을 서면을 통해 법원에 제출, 변론 중단을 공식화했다. 당시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바른 사무실에서 근무하던 변호사 A씨는 "건물을 둘러싼 시위행렬 때문에 업무를 제대로 할 수 없었다"며 "험악한 분위기에 놀라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박 회장의) 변호를 그만두라'는 시위대의 요구에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바른 관계자는 "회사가 검찰 단계에서 이미 사건에서 손을 뗐다고 밝히자 비대위는 박 회장 등에게서 받은 수임료를 내놓으라고 주장했다"며 "피 같은 돈을 잃게 된 피해자들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치에 맞지 않는 지적이었다"고 밝혔다. 이 사건 이후 대한변호사협회는 "피해자들의 억울한 심정을 고려하더라도 변호사들에 대해 불법적인 행위를 용인하기는 어렵다"며 강력 반발하는 성명서는 냈지만 세간의 여론이 법조계에 그다지 우호적이지만은 않아 속앓이를 하고 있다. 피의자의 변호를 중단하라는 식의 이 같은 압박은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투기자본감시센터와 전국금융노동조합 등은 론스타 코리아의 법률대리를 맡고 있는 김앤장 법률사무소로 찾아가 집회를 열고 '론스타 게이트 책임자 처벌'과 '김앤장 해체'라는 요구를 내세우기도 했다. 지난달 25일에는 '도박문제 해결을 위한 범국민운동'이라는 이름 아래 모인 300여개 시민∙종교단체들이 강원랜드와 한국마사회를 변호하고 있는 김앤장 법률사무소와 법무법인 화우를 '도박조장 5적' 명단에 올렸다. 변론 중단을 요구하는 압박에 대한 고민은 대형 로펌만의 일이 아니다. 개인변호사들은 사무실 번호나 신분이 쉽게 노출돼 심리적 부담이 더 크다. 미국산 소고기 수입 한국 측 협상대표로 나갔던 민동석 외교통상부 제2차관이 PD수첩 제작진을 형사 고소하는 과정에서 도움을 줬던 엄상익 변호사는 "PD수첩 방송 내용 중 일부가 허위보도였다는 점이 인정됐지만, 아직도 제 블로그에는 비방과 욕설이 올라온다"며 "변호인으로서 의뢰인을 변호하는 건 당연한데도 종종 인신공격의 대상이 된다"고 털어놨다. 그는 신창원을 변호할 때도 '맞을 걱정'을 하고 길에 나왔다고 했다. 서초동에서 활동하는 변호사 B씨는 "이혼 소송에서조차 배우자를 변호하는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욕을 듣기도 한다"며 "험한 의뢰인을 만나면 멱살 잡히는 일도 다반사"라고 하소연했다. 장진영 대한변협 대변인은 "소송관계인이 주먹을 휘두르거나 전화로 협박하는 경우는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라며 "헌법에 보장돼있는'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이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변론권 침해를 방지하기 위해 서울변회는 '회원지킴이 콜서비스'를 도입해 2009년부터 시행해오고 있다. 회원들이 신변의 위협을 느낄 경우 사무실부터 법정까지 가는 길을 경호해주는 이 서비스는 꾸준히 신청이 들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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