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탁희 광주과학기술원 교수<br>고집적·저비용으로 실리콘 반도체 대체·보완 가능<br>게이트 전극 이용 전류 양 조절·메커니즘 첫 규명<br>유기물 기반 메모리 소자도 단독 개발 세계가 주목
| 이탁희(오른쪽) 교수가 광주과학기술원 내 연구실에서 연구원과 함께 단분자 기반의 메모리 소자 기술 개발을 위한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사진제공=광주과학기술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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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자전자소자(Molecular electronics)'는 개별 분자들을 전자소자의 주요 구성요소로 이용하는 개념이다. 분자 고유의 크기가 보통 수 나노미터(㎚) 이하로 매우 작고 자기조립(Self-assembly)에 의한 상향식(Bottom-up approach) 공정이 가능해 고집적ㆍ저비용의 전자소자를 제조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 때문에 기존의 실리콘 반도체 소자들을 대체ㆍ보완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세계의 유수 대학들과 연구기관들에서 활발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분자전자소자 연구 분야에서 지난 10년간 꾸준한 연구를 수행해온 이탁희(42) 광주과학기술원 신소재공학부 교수는 전자소자의 가장 핵심 요소인 트랜지스터 소자에 분자를 접목해 분자 트랜지스터(Molecular transistor) 소자를 개발하는 데 성공, 국제적인 주목을 받았다. 이 연구결과는 지난해 12월 세계 최고 권위의 과학저널인 '네이처(Nature)'지에 게재됐다.
◇분자 트랜지스터 소자 개발 원천기술 확보=이 교수는 분자 트랜지스터 소자 개발 연구에서 트랜지스터 구조의 분자소자를 제작해 단일 분자를 통해 이동하는 전류를 조절하고 이와 관련된 전하수송 메커니즘을 규명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이를 위해 단일 분자를 자기조립방법으로 소스 전극과 드레인 전극 사이에 연결시켜 얇은 유전층(Gate dielectric layer)으로 절연된 게이트 전극을 이용해 분자의 전하흐름을 제어할 수 있는 트랜지스터 소자를 제작했다. 또 비탄성터널링 분광법(Inelastic Electron Tunneling Spectroscopy)을 이용해 분자 트랜지스터 내에 존재하는 단일 분자에 대한 진동 스펙트럼을 관찰함으로써 분자 오비탈(Orbital)의 게이트 의존성을 밝혀내고자 했다.
이 교수는 분자 트랜지스터 소자의 게이트 전극을 이용해 분자 오비탈의 에너지 준위를 직접 조절함으로써 이동전하의 터널링 수송에 대한 에너지 장벽의 크기를 조절, 전류의 양을 조절하는 데 성공했다.
분자를 통해 흐르는 전류는 게이트 전압에 따라 조절되는 분자의 오비탈 에너지 준위에 의존하게 되고 전하수송 메커니즘은 인가된 게이트 전압과 소스-드레인 전압에 따라 다이렉트 터널링에서 전계방출에 따른 터널링으로 전이된다. 이때 측정된 전이전압은 분자의 오비탈 준위와 소스-드레인 전극의 페르미 준위(Fermi level) 간의 에너지 차이에 의존한다. 이러한 현상을 이용해 분자 트랜지스터를 구현했다.
이 교수는 또 비탄성터널링 분광법을 이용해 분자 트랜지스터 내에 존재하는 단일 분자에 대한 진동 스펙트럼을 관찰, 분자 오비탈의 게이트 의존성을 규명하는 데도 성공했다.
이러한 연구결과는 제작된 분자 트랜지스터의 전하이동이 실제로 분자를 통해서 일어나며 트랜지스터 소자의 게이트 전극으로 분자 오비탈을 직접 제어할 수 있다는 새로운 사실을 처음으로 밝혀냈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이 교수는 설명했다.
그는 "지금까지 실리콘 기반의 반도체 기술로는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단일 분자를 이용한 분자 트랜지스터를 개발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라며 "분자전자소자 분야에서 가장 핵심요소라고 볼 수 있는 분자 트랜지스터 소자 개발 원천기술을 확보하는 데 우의를 점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고 강조했다.
◇6년여간 90여편 논문 유명저널에 발표=이 교수는 분자 트랜지스터 소자 개발 외에도 유기물 기반의 메모리 소자, 일차원 나노선 트랜지스터 기반의 로직 및 소자 기술 개발 연구 등에서도 탁월한 성과를 이뤄냈다.
유기 소재를 이용한 비휘발성 메모리 소자는 가격이 저렴하고 구조가 간단하며 그 특성이 우수하다는 장점 때문에 차세대 반도체 메모리 소자 기술로 주목 받고 있는데 이 교수는 유기 메모리 소자와 트랜지스터를 연결한 '1T-1R 소자'를 제작한 데 이어 소자와 인접한 메모리 셀 간의 간섭현상을 없앤 집적화된 유기물 기반 비휘발성 메모리를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이 교수는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 '1T-1R 소자'보다 집적도가 뛰어난 '1D-1R(1 Diode + 1 Resistor) 소자' 개발에도 성공했다. '1D-1R 소자'형 유기 메모리 소자는 가까운 메모리 셀들 간에 발생하는 간섭현상을 완벽히 제거해 기존의 정보 판독 오류 문제를 해결할 수가 있다.
특히 이러한 연구는 고집적 메모리 소자 구현에 필요한 기술을 국내 연구진이 단독으로 제작했다는 점에 큰 의미가 있다. 전세계가 주목하는 차세대 고집적 유기 메모리 소자 개발을 우리나라가 주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교수의 이러한 연구성과는 학계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아 재료공학 분야의 최고 권위를 지닌 '어드밴스드 머티리얼스(Advanced Materials)'지의 내부 표지논문으로 게재됐다.
이 교수는 또 일차원 나노소자 개발에도 성공한 바 있다. 일차원 나노구조물은 탄소나노튜브를 비롯한 규소(Si), 게르마늄(Ge) 등의 반도체 나노선으로 일차원 나노구조물의 합성 및 전자소자로의 응용기술 개발은 실리콘 기반 반도체소자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으로서 활발한 연구가 이뤄지고 있는 분야다.
기존의 나노선 전계효과 트랜지스터는 일차원 구조물 자체를 트랜지스터의 채널로서 사용하기 때문에 응용할 수 있는 범위가 한정됐으나 이 교수는 산화아연 나노선을 간단한 화학기상증착법을 통해 우수한 재현성을 지닌 전계효과 트랜지스터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나노선의 표면구조와 작동 모드의 상관관계를 규명한 이 연구결과는 나노과학 분야 최고의 권위를 가지는 국제학술지인 '나노 레터스(Nano Letters)'지에 실렸다.
이밖에 산화아연 나노선 트랜지스터 및 탄소나노튜브 트랜지스터 소자를 조합해 신뢰성 있는 인버터(Inverter), 노어(NOR), 낸드(NAND) 등과 같은 다양한 로직 회로 및 SRAM 메모리 소자 제작 기술도 개발하는 등 나노 크기의 전자소자 분야에서 탁월한 연구성과를 잇따라 내고 있다.
지난 2004년부터 광주과학기술원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이 교수는 "이러한 연구성과를 내기까지 묵묵히 연구에 전념하고 있는 분자나노소자 연구실의 대학원생의 역할이 컸다"고 고마움을 표현했다.
이 교수는 최근 6년여 동안 90여편의 논문을 유명 저널에 발표했으며 그와 지도학생들은 약 200여건의 학회발표를 했다. 이 교수는 뛰어난 연구업적을 인정 받아 2008년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상을 수상한 데 이어 4월 국무총리 표창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