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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ㆍ기아차가 유럽 시장에서 현지화를 강화해 승부를 건다. 개발과 생산ㆍ마케팅에서 철저하게 유럽 기업처럼 행동해야만 유럽 소비자에게 보다 가깝게 다가갈 수 있기 때문이다.
11일(현지시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리고 있는 제65회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서 현대차 유럽 법인 측은 "'트룰리 유러피언 카메이커(진정한 유럽의 자동차 업체)'를 슬로건으로 현지화를 대대적으로 강화하기로 내부 방침을 확정했다"고 밝혔다.
기아차 역시 이번 국내 공장 파업에 따른 생산 차질을 유럽 공장 풀가동을 통해 막았다고 자체 평가하고 개발부터 생산ㆍ애프터서비스에 이르는 전과정을 유럽에서 완결하는 비중을 높인다는 방침이다.
현대ㆍ기아차가 이처럼 현지화 강화를 외치는 이유는 최근의 급성장을 넘어 명실상부한 유럽 내 주요 자동차 브랜드로 자리를 굳히기 위해서다. 유럽 자동차 소비자는 세계에서 가장 까다로운 것으로 유명하다. 유럽에서 개발하고 만든 차가 아니면 차도 아니라는 묘한 자존심이 있다는 게 현지의 분석. 때문에 해외 브랜드는 현지화 없이 어느 한계 이상 성장하기 어렵다는 게 유럽 자동차 업계의 보편적인 시각이다.
앨런 러시포스 현대차 유럽법인 수석부사장은 "이미 유럽에서 판매하는 차종 중 95%가 유럽에서 디자인하고 개발한 차"라면서 "유럽 판매 차량의 현지 생산 비중 또한 올해 말까지 90%로 끌어올리려고 한다"고 밝혔다.
마이클 콜 기아차 유럽법인 최고운영책임자(COO)는 "기아차의 최근 단기 급성장을 긴 추세의 일부로 만들려면 현지화를 강화하는 것만이 답"이라면서 "최근 슬로바키아 공장 풀가동으로 한국 공장 파업에 따른 판매 기회 손실을 최소화한 것을 보고 더 큰 확신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현지 생산 차종인 '스포티지'와 '씨드'는 각각 8%와 4% 전년 대비 판매가 늘고 기아차 전체 유럽 판매 중 현지 생산 물량 비중은 지난해보다 5%포인트 상승한 59%까지 올라갈 것으로 콜 COO는 내다봤다.
현대ㆍ기아차는 기계적 품질이 어느 정도까지 올라온 만큼 앞으로 차의 감성품질을 강화하는 데도 현지화를 활용할 방침이다.
마크 홀 현대차 유럽법인 마케팅 담당 부사장은 "유럽 소비자는 차를 고를 때 만져보고 느껴보고 냄새도 맡아볼 정도로 예민하다"면서 "그러려면 감성품질을 높여야 하는데 유럽 사람이 원하는 것을 채워주려면 유럽에서 차를 개발하고 만들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일본 도요타의 경우 기계적 품질이 유럽 차보다 앞서 있었지만 인테리어나 내장재 고급화 등 감성품질에 대한 소비자의 요구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아직도 유럽에서 만족할 만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게 그의 분석이다.
아울러 현대ㆍ기아차는 브랜드 가치를 높여 기존 고객의 재구매율을 높여야만 지금의 성장을 이어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홀 부사장은 "현대차 고객 10명 중 7~8명이 다른 브랜드 차를 타다 넘어온 손님"이라면서 "시장점유율을 추가로 높이려면 이들 고객의 재구매율이 현재 48~49%에서 60%까지 올라가야 한다"고 분석했다. 이를 위해 현대ㆍ기아차는 브랜드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는 한편 현대차와 기아차가 고용ㆍ세수 등 경제 전반에 얼마나 기여하는지를 집중 홍보한다는 방침이다. 현대차는 '모터스포츠의 성지(聖地)'로 불리는 독일 뉘르부르크링에 자동차 성능 시험장을 신설할 계획이기도 하다.
콜 COO는 "유럽 경제는 터닝 포인트를 맞은 것으로 보이지만 자동차 시장은 여전히 어렵다"면서 "현지화를 강화해 회복기를 대비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