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법조인의 자존심

법조인(판사·검사·변호사)이 되려면 사법시험에 합격해야 한다. 광복이후 자격시험으로 100명 이내에서 합격자를 내던 사법시험이 현재는 연간 700명을 뽑는 선발시험이 됐다. 필자가 합격했던 1965년의 제5회 사법시험 합격자수는 16명이었다.5공화국 초 국민에게 적절한 법률서비스를 제공하고 법조인의 지나친 엘리트 의식을 간과할 수 없다는 명분으로 1년에 300명씩 합격자를 선발하면서 법조인 수는 급격히 증가하기 시작했다. 매년 100명씩 증원해 1,000명까지 합격시킨다고 한다. 사회발전과 인구증가, 경제규모의 확대에 따라 법률서비스의 수요도 증대되므로 사법시험 합격자수를 조금씩 늘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현재의 사법시험 합격자수에 관한 논의는 그러한 측면보다 오히려 법조인의 엘리트 의식을 제압해야겠다는 면이 강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법은 정의를 본질로 하고 법조인은 그 정의를 실현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필요한 사람에게 적절한 법률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겸허한 자세도 필요하지만, 사회정의의 실현자라는 자존심은 더욱 필요하다. 그러한 자존심이 없다면 법조인은 자기의 위치를 출세의 수단으로 삼고 직업인으로서 돈을 버는 일에 급급하게 될 것이다. 검사는 검찰권을 그릇되게 행사하게 될 것이다. 판사는 자기 위치를 지키기 위해 눈치를 살피게 될 것이다. 변호사는 숱하게 많은 동료들 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해 부정과 결탁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사회는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정의가 없는 사회이다. 법조인 수가 급증하면서 이런 걱정이 부분적으로는 현실화되고 있는 듯하다. 자격시험으로 소수의 합격자를 내던 시절, 판·검사들은 배짱이 있었다. 소신껏 일하고 그만두라면 그만두고 변호사하겠다는 것이었다. 판사가 소신껏 재판하고 검사가 소신껏 검찰권을 행사하지 못한다면 이미 진정한 의미에서의 판·검사는 아니다. 변호사의 수가 급증해 판·검사들이 변호사 개업하기를 주저한다고 한다. 현직에 있는 법조인들이 더욱 연구하고 몸가짐을 바로 하는 등의 발전도 두드러지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 조심하는 것이 자리보전과 출세를 위해 권력의 눈치를 보는 데까지 발전된다면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을 아무도 믿지 않아 특별검사제 도입에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고, 여당 무죄, 야당 유죄라는 말이 그럴 듯하게 들리는 상황이 서글플 따름이다. 23세에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서울 형사지방법원 판사로 재직하던 중 권부의 미움을 사 31세때 전국에서 가장 나이어린 변호사가 되었던 필자는 불신의 대상이 되어버린 정치권에 몸담고 있지만 아직도 법조인의 자존심을 지키려 노력하고 있음에 위안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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