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주주총회는 한해의 결산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다.’ 유가증권시장(옛 거래소)에 상장된 231개 기업이 18일 일제히 정기 주주총회를 열면서 전체 대상기업 577개의 67%인 390개사가 결산보고서를 승인받았다. 올해 주총 시즌도 막바지에 접어든 셈이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올해부터는 주총이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고 지적한다. 집단소송제가 도입되면서 자산 규모 2조원 이상인 82개 상장기업은 재무제표 승인과 동시에 분식회계ㆍ허위공시ㆍ미공개정보 이용 등에 대한 집단소송에 노출되기 때문이다. 김성표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과거에는 주주들이 주총을 통해 경영을 감시했지만 앞으로는 집단소송을 통해 상시 감시가 가능해진 만큼 상시 주총 체제가 구축된 셈”이라며 “올해 주총은 기업들의 투명성이 레벨업되는 전환점이었다”고 평가했다. 실적호전 등으로 기업회계가 수면 위로 부상하지는 않았지만 잠재돼 있는 핵폭탄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올해 주총은 지난해처럼 경영권 분쟁 등 사건이 많지 않았지만 내부적으로는 변화가 적지않았다. ◇경영권보다는 경영성과 평가 관심=올해 주총은 기업의 경영성과를 평가하는 장이었다. 최근 몇 년 동안은 기업의 실적보다는 경영권 분쟁ㆍ소액주주의 경영권 견제 등이 주요 이슈로 자리를 잡았지만 올해는 기업의 실적을 평가하고 기업가치를 높이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는 자리였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SK와 소버린의 경영권 다툼이 재연됐지만 최태원 SK 회장이 경영권 방어에 완승을 했다. 또 18일 열린 세이브존아이엔씨 주총에서 세이브존과 이랜드가 경영권과 관련한 공방을 벌였을 뿐이다. 주총이 경영성과를 평가하는 자리가 된 이유로는 기업들의 실적개선과 기업지배구조의 개선 등을 꼽을 수 있다. 삼성전자가 10조원이 넘는 순익을 기록하면서 ‘100억 달러 클럽’에 진입했고 포스코ㆍLG필립스LCDㆍLG전자ㆍ삼성SDI 등도 사상최고 실적을 기록했기 때문이다. 코스피100에 포함된 주요 기업들의 매출은 전년에 비해 22%, 순익은 88%나 증가했다. ◇배당ㆍ자사주 매입요구 증가 및 스톡옵션 논란=기업들의 실적이 좋아지고 주주권리를 찾으려는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배당과 자사주 매입 요구가 증가했다. 외국인 투자가가 촉발시킨 고배당 요구에 개인들과 기관들도 동참을 했고 기업들도 긍정적인 시각에서 주주들의 요구를 수용하고 있다. 실제로 올해 하나은행ㆍ화천기공ㆍ비앤지스틸 등 11개사는 분기 배당제를, 일진다이아몬드ㆍ동원시스템즈 등 5개사는 중간배당제도를, 대한항공ㆍ농심ㆍ모나미 등 13개사는 주식소각제도를 도입하는 등 주주권익에 대한 인식이 확산됐다. 또 소액주주권을 보장하기 위해 주총에 출석하지 않고 서면으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서면의결권제도를 도입한 곳도 KTㆍCJㆍKTFㆍ유니켐ㆍ한국폴리우레탄공업 등 5개사에 달했다. 올해 배당은 사상최대인 10조원에 달하고 이중 절반 가량은 외국인이 차지했다. 올해 주총의 또 다른 특징은 스톡옵션과 관련해 그 어느 해보다 논란이 많았다는 것. 우리금융지주의 스톡옵션 지급 논란과 사외이사의 스톡옵션 반환사태가 벌어진 데 이어 이날 국민은행 주총에서도 스톡옵션과 관련해 소액주주와 공방이 벌어졌다. ◇회계 투명성이 관건=앞으로는 주총을 통한 재무제표 확정이 한 해의 끝이 아니라 소송을 염려해야 하는 새로운 시작으로 바뀌고 있다. 올해부터는 재무제표가 확정되면서 분식회계 등과 관련된 집단소송에 곧바로 노출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국내 기업의 회계 투명성이 점점 나아지고 있다고 평가한다. 당기순이익과 영업현금 흐름간의 차이를 이용해 계산하는 ‘분식가능 지수’도 지난 96년 100에서 지난해 이의 절반을 밑도는 49로 낮아졌다. 그러나 제도적으로 국제수준의 회계시스템을 갖추고 있을 뿐 실제 투명성은 낮은 수준이라고 지적한다. 정윤식 대한투자신탁운용 주식투자전략팀장은 “앞으로는 주총에서 기관들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면서 기업회계와 투명성 문제가 계속 지적될 것”이라며 “집단소송이 본격적으로 시행되는 오는 2006년부터는 부실회계에 대한 책임추궁이 주총의 가장 큰 이슈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