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국민 감성 사로잡은 '파타고니아의 표범'

■페르난데스 대통령은<br>남편 사망때 4개월간 검은 정장<br>범국민적 향수 불러일으키며 인기

페르난데스 대통령이 압도적 지지를 얻어낼 수 있었던 배경으로는 경제 성장과 더불어 국민들의 감성을 움직인 '소프트 파워'가 꼽힌다. 그는 남편이 갑작스런 심장마비로 사망한 지난해 10월 이후 4개월 넘게 검은 옷을 입고 다니며 남편에 대한 향수를 지지로 바꿔놓았다. 당시 아르헨티나에서는 전임 대통령인 네스토르 키르치네르의 이름을 딴 학교와 거리가 등장하는 등 한동안 추모 열풍이 불기도 했다. 그에게는 또 명품 중독에 빠졌다는 꼬리표가 늘 따라 다닌다. 지난달 프랑스 순방을 다녀온 직후 뉴욕포스트는 그가 프랑스에서 머무는 동안 구두 등 10만달러어치의 명품을 구입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겉모습에 집착하는 페르난데스 대통령을 두고 지난 2007년 첫 대선 당시 경쟁 후보인 카리오는 그를 '보톡스의 여왕'이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페르난데스 대통령이 저소득층의 압도적 지지를 얻고 있기는 하지만 그의 성장 과정은 순탄한 편이었다. 그는 지난 1953년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라플라타시(市)에서 태어나 라플라타 국립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했고 1974년 전임 대통령인 네스토르 키르치네르를 만나 이듬해 결혼했다. 지난 1976~1983년 군사독재정권 기간 남편의 고향인 산타크루스 리오가예고스시에서 변호사로 활동했으며 군정 종식 이후 본격적인 정치가로서 활동을 시작했다. 1989년 주의원에 당선되며 정계에 정식 입문한 이후 연방 상원의원, 연방 하원의원에 잇달아 당선됐다. 2003년에는 남편의 대선캠프에 참여했으며 이후 부에노스아이레스 지역으로 지역구를 옮겨 활발한 정치활동을 이어오다 2007년 10월 남편에 이어 대통령에 당선됐다. 페르난데스 대통령은 '파타고니아의 표범'이란 별명답게 정치적 위기를 잘 넘겨 왔다는 평가를 얻고 있다. 집권 직후인 2008년에는 지지율이 30% 선으로 급락했고 이듬해인 2009년 총선에서 집권당이 참패해 올해 재선이 힘들 것이란 부정적 전망도 나왔지만 남편의 경제성장모델을 흔들림 없이 밀어붙여 결국 서민층의 지지를 끌어냈다. 부에노스아이레스 헤럴드는 "페르난데스 대통령이 국정 운영의 연속성을 강조해 재선에 성공했다"며 "아르헨티나 국민들은 그의 정책에 지지를 보내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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