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동십자각] 일본의 두 얼굴

초유의 강력한 지진이 일본을 강타했다. 리히터 7.9의 강진은 건물들을 불태우며 아비규환의 참극을 초래했다. 9만9,300여명이 사망했고 4만3,500여명이 행방불명 됐다. 가옥도 25만여 채나 파괴됐다. 일본 역사상 가장 많은 희생자를 낸 '관동 대지진'이다. 여기까지는 일본 동북 지역을 초토화시킨 3.11 지진 사태와 별반 차이가 없다. 자연이 만든 비극 앞에 일본인들은 통곡했고 정부와 국민들이 구조와 구호 활동에 나선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다. 하지만 관동 대지진 직후 양상은 지금과 사뭇 달랐다. 이번 대지진 앞에서 보여준 일본인들의 극기와 질서의식에 대한 찬사와 존경이 넘쳐나고 있다. 남에게 폐를 끼치지 말자는 '메이와쿠 가케루나'정신으로 사경을 헤매다 구조가 돼도 "미안하다"고 말하는 생존자들, 주먹밥 하나를 서로 양보하는 이재민들, 불안이 극에 달한 상황에서도 줄을 서며 질서를 유지하는 일본 시민들. 이들 모습은 한국인은 물론 세계를 감동시키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88년 전 그들은 정말 달랐다. 정부의 방조 아래 "조선인들이 폭도로 돌변해 우물에 독을 풀고 일본인을 습격하고 있다"는 유언비어가 횡행했다. 자경단은 불심검문을 하며 죽창이나 몽둥이ㆍ일본도로 조선인이나 중국인을 가차없이 죽였다. 일주일 사이 조선인은 6,400여명이나 학살당했다. 새삼 88년 전인 1923년에 일어난 관동 대지진 얘기를 끄집어 내는 것은 사람은 원래부터 무조건 악하지도 선하지도 않다는 생각이 스쳐서다. 두 지진 이후 일본인 행태의 차이점을 분석하는 건 사회학자 등의 몫이다. 88년의 시차에 군국주의와 민주주의, 그리고 정부의 정보 독점과 정보기술(IT)혁명에 따른 정보민주화 등등. 만약 대지진이 한반도를 강타한다면 한국인들은 어떤 행동양식을 보일까. 정부가 나서 교묘하게 포퓰리즘을 계속 선동하고 종교 지도자라는 자가 일본이 기독교를 믿지 않아 지진이 났다며 "하나님의 경고" 운운하는 갈등을 유발하는 말을 내뱉는 일이 반복된다면 우리는 어쩌면 88년 전 일본인에 더 가깝게 될지 모른다. 일본통인 이우광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이 일본 시민의 질서의식에 대해 "민족성보다는 교육의 성과"라고 분석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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