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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김종훈 "날 밟고서라도 FTA논란 끝냈으면"
입력2011.11.29 17:53:59
수정
2011.11.29 17:53:59
김종훈 본부장 단독 인터뷰<br>발효 시점 한달 정도 늦어질 수도, ISD 재협상서 폐기 논의는 못해<br>한중FTA도 빠르면 빠를수록 좋아, 외국인 투자 늘면 국내기업에 자극<br>FTA로 새로운 일자리 크게 늘것, 새 술은 새 부대에… 거취 여운 남겨
| 김종훈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이 29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발효를 위한 14개 부수 법안을 심의하기 위해 이명박 대통령 주재로 열린 국무회의에 앞서 참석 장관들과 얘기하며 환하게 웃고 있다. /왕태석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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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서울경제신문은 김종훈(사진·59) 통상교섭본부장과 단독 인터뷰를 갖고 지난 5년여를 돌아봤다. 공교롭게 이날 야당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 무효를 외치며 격렬한 장외투쟁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이명박 대통령은 한미 FTA 이행법안에 서명, 비준 절차를 마쳐 우리 사회의 갈등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김 본부장은 지난 2006년 2월 한미 FTA호의 닻을 올렸다 2011년 11월 배의 닻을 내리기까지 대미협상은 물론 방송 토론과 국회 설득까지 도맡아온 한미 FTA의 산증인이다.
질문은 "대통령이 서명할 때 소회가 어떻했느냐"로 시작됐다. 김 본부장은 특유의 검투사적인 무표정으로 "'다음 할 일이 뭐지' 하는 생각은 했지만 특별한 느낌은 없었다"고 했다. 양국 간 한미 FTA 발효 목표시점(2012년 1월1일)과 관련해 그는 처음으로 "한 달가량 늦어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김 본부장은 "서로 제정 혹은 개정한 법을 앞으로 교환해 FTA에 걸림돌이 되는 것은 없는지 검증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고 설명했다. 4년 넘게 기다린 FTA인 만큼 한 달을 더 기다려도 제대로 해야 한다는 의지가 강했다.
그래서일까. 그를 '매국노'로 비난하는 격렬한 FTA 반대 집회로 화제가 넘어가자 결연해졌다. 김 본부장은 "반대하는 분들 분이 좀 풀리고 (한미 FTA를 둘러싼) 논란을 끝낼 수 있다면 날 밟고 가도 좋다" 며 자리에 연연할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혹여 싶어 "대사직에 미련이 남지 않느냐"고 묻자 "방금 한 말은 그냥 해본 말이 아니다"라며 단호했다.
1974년 11월 외무고시 8회로 입부한 김 본부장은 외교통상부 최고참으로 장관급에 있지만 외교관의 '꽃'으로 불리는 대사를 한 번도 못했다. 지난 8년간 미국, 유럽연합(EU), 인도 등과 콜로세움 같은 협상장에서 전투를 치렀으니 후방이 그리울 듯한데 그는 FTA와의 인연을 운명처럼 받들며 "(물러나서) 인사권자인 대통령과 정부의 짐이 조금이라도 덜어졌으면 한다"는 말만 했다. 그는 이어 한중 FTA의 협상 개시 시점을 묻자 "오랫동안 연구해와 준비는 거의 다됐다. 빨리 하면 할수록 좋다"면서도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하지 않겠느냐"며 여운을 남겼다.
친자식처럼 FTA에 모든 것을 거는 김 본부장이 기대하는 효과는 무엇일까. 'FTA는 활용하기 나름'이라는 정답은 우선 제쳐두고 그는 '일자리의 첨병'이라는 의미를 부여했다. "서비스 시장 등 개방이 확대됐으니 외국인투자가 더 많이 들어올 겁니다. 일자리가 생기죠. 투자를 망설이는 국내 기업도 시장을 지키고 벤치마킹하면서 주머니를 열 테니 또 신규 고용이 일어납니다. 일자리가 분명 많이 늘어요." 김 본부장은 "미국ㆍEU가 어려운데 어쨌든 우리 기업은 거기서 경쟁할 때 무기를 하나 더 갖게 된다"고도 했다.
내년 한미 FTA 발효 후 투자자국가소송제(ISD) 재협상에 대해 그는 "미국에 꼭 요구할 것"이라고 확인했다. 하지만 김 본부장은 "ISD의 필요성은 여전히 분명해 폐기하는 협상을 할 수는 없다" 면서 "ISD 발동을 강화하고 소송을 남발하면 소위 '독박'을 쓰는 장치 마련이나 단심제를 재심제로 변경하는 문제들이 협상 테이블에 오를 것"이라고 예상해 ISD 재협상 계획을 설명했다. 그는 "ISD 발동을 강화하거나 남소 방지에 대해서는 미국에서도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고 전했다.
김 본부장은 "ISD를 시행한 150여 개국 중 최근 폐기한 곳은 볼리비아와 에콰도르 두 곳뿐인데 그런 나라를 우리가 따라가야 하는지 묻고 싶다"고 강조했다. 그는 야당이 주장하는 중소기업 적합업종 지정 특별법 등이 ISD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서는 "재산권을 침해할 수 있는 불평등한 규제라면 외국인보다 먼저 내국인에게 헌법소원의 대상이 된다" 며 "오히려 ISD가 포퓰리즘적 정책을 막는 장치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그는 여야가 요구하는 대형마트의 영업시간 제한에 대해서는 "국내외 자본을 차별하지 않기 때문에 ISD 조항에는 걸리지 않는다"고 말해 관련 제도를 도입할 수도 있다는 뜻을 내비쳤다.
2007년 8월8일 통상교섭본부장이 된 그는 고(故) 노무현 대통령의 직인이 찍힌 임명장만 갖고 있다. 이 대통령에게는 정부 출범 직전 사표를 냈다 돌려받은 간단한 신임 절차가 전부였다. 김 본부장은 "노 대통령이 좌측 깜박이를 켜고 우회전한다는 비판도 들었지만 FTA의 필요성과 추진 의지는 확고했다" 며 "경제나 외교에서 '균형'을 이루려는 생각이 컸던 것으로 감히 추측한다"고 말했다.
가장 힘든 싸움을 2008년 미국과의 쇠고기 재협상으로 꼽은 그는 "협상을 논리로 할 수 없어 곤혹스러웠다"고 회상했다. "광화문의 촛불집회 사진을 들고가 미국을 설득했다"는 그는 "그것을 논리로 설명할 수 없으니까…"라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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