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한은특융 해야하나(논쟁)

지난해부터 대기업 부도 및 부도유예협약 적용이 잇따르면서 금융기관 부실여신규모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특히 일부 은행의 경우 부실여신에 대한 대손충당금 적립규모가 워낙 커서 이익을 낼 수 없는 처지에 놓여있다. 더구나 이같은 상황이 당분간 해소될 전망은 보이지 않는 가운데 앞으로 부도기업이 더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는 암울한 예측만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금융기관, 특히 일부 은행의 정상적인 영업활동을 위해서는 한국은행이 특별융자를 통해 지원해주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실제 제일은행과 서울은행은 한국은행에 특융지원을 공식 요청했다. 특융지원없이는 정상 영업이 이뤄질 수 없는 상황인데다 대외적으로도 한국계 은행의 신뢰 회복을 위해서는 특융지원이 절실하다는게 특융 찬성론자들의 주장이다. 하지만 한은특융이란 중앙은행의 최종대부자 기능으로서 심각한 유동성위기가 초래될 때에만 극히 제한적으로 이뤄져야 하는 조치라는 점때문에 반대론도 만만치않은 실정이다. 현재 제일은행과 서울은행의 어려움은 유동성차원의 문제가 아니고 단지 경영수지상 흑자를 내기 힘들다는 문제일 뿐이라는 지적이다. 더구나 제일은행과 서울은행의 부실여신은 자체적인 여신심사를 거져 발생한 것인데 통화증발 및 국민부담 가중을 초래할 한은특융으로 지원한다는 것은 심각한 도덕적 해이의 문제를 불러올 것이라는 비판이 적지않다. 금융당국이 특융지원을 섣불리 결정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이같은 이유때문이다. 결국 한은특융은 현재 금융시장 상황을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 국내 금융기관의 대외신인도 제고 및 금융시장의 신뢰회복이라는 측면과 최종대부자 기능 및 국민부담 가중이라는 문제점을 신중히 비교해 선택해야 할 문제인 셈이다. 한은특융 지원을 주장하는 견해와 이를 반대하는 입장을 들어봤다.<편집자주>◎찬성/금융시장 안정위해 불가피/은행권 신용도 회복으로 영업활성화/구조조정 등은 화급사태 해결책 못돼/자금여력·부실여신규모로 지원기준마련/우영수 LG경제연 부연구위원 최근 기업의 잇따른 도산은 기본적으로 특정기업의 경영부실을 근원으로 하지만 작금의 상황은 경기순환상의 특성과 함께 시장개방으로 인한 경쟁격화라는 시장환경의 변화에 기인하는 구조적 성격도 띠고 있다. 이러한 상황들은 시장경제운영에 있어서 탈규제를 기본원칙으로 하는 정부의 간섭배제와 시장경제원리에 의한 경제운영이라는 정부 경제정책의 기조변화와 맞물리면서 사태를 해결하기 위한 대책수립에 있어 그 어느 때보다도 어려운 선택을 강요하고 있는 느낌이다. 최근 사태를 해결하기 위한 대책중 하나로 한은특융이 거론되고 있다. 한은특융의 타당성 여부는 기본적으로 현실 경제상황을 한은법 63조의 특융필요요건(통화와 은행업이 직접적으로 위협받는 중대한 긴급상황시)에 견주어 어떻게 평가하는가에 달려있다. 현재 기업의 연쇄부도와 부실채권 증가로 인한 금융기관의 경영위기를 내용으로 하는 현 경제상황에 관한 평가는 첫째 기업의 경영능력에 대한 상황인식, 둘째 금융기관을 매개로 하는 경제주체들간의 상호관계에 관한 상황인식을 바탕으로 내려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평가는 구체적 범위와 정도의 차이에 따라 구체적인 「한은특융」이라는 정책적 처방에 대한 입장차이를 설명해주고 있다. 한은특융을 반대하는 입장은 현재의 기업부도상황과 금융위기의 근원을 기본적으로 기업 경영상의 문제로 파악, 경제는 경제원리로 풀어야 한다는 논지를 펴고 있다. 그리고 구체적으로는 한은특융이 가져다 줄 수 있는 통화팽창으로 인한 물가불안과 금융기관의 도덕적 해이문제, 특정 이해집단의 로비로 인한 경제원리의 훼손, 그리고 경제원리를 무시한 특혜적 지원이 가져다 줄 수 있는 비효율적 자원배분을 지적하고 있다. 이러한 우려들은 지난 92년 주식시장 활성화를 위하여 정부가 투신사들에 행한 한은특융을 통해 타당성을 인정받기도 한다. 그러나 한은특융을 포함한 정부의 선별적 정책금융을 반대하는 이러한 견해는 작금 관찰되는 기업의 부도사태와 금융시장의 혼란에 대한 상황판단을 위에서 언급한 첫번째 시각에 치중하여 내리고 있지않나 하는 느낌을 준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기업부도와 금융공황에 가까운 상황은 단순한 경영상의 이유로 인한 기업도산과 이로 인한 일시적 자금순환상의 어려움으로 볼 수만 없는 여러가지 요인들을 내포하고 있다. 현 상황은 금융중개기능이 실물부문에서 발생하는 위험요소를 분산시키기보다는 위험의 원인이 되어 실물경제를 교란시키는 양상이다. 금융기관들은 경기확장기에 기업의 사업성에 대한 객관적 평가없이 과도한 대출을 행하던 때와 똑같이 경기수축이나 경제혼란이 발생하고 있는 지금 기업의 사업성이나 객관적 경제상황에 대한 평가없이 금융중개기능을 포기하고 과도한 신용축소를 실행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부도율의 상승에도 불구하고 금리상승이 눈에 띠지 않는다는 사실에 의해 뒷받침되고 있다. 현 경제상황은 전체 유동성의 부족에서 기인한다기보다는 전체 경제상황과 금융기관에 대한 신용훼손에서 기인하는 신용공황의 성격이 짙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문제의 핵심은 현재의 우리 금융기관들은 여타 경제주체들을 매개하는 경제활동의 매개기능, 자금의 형성, 중개기능 등을 원활히 수행하는데 있어 자발적으로 극복하기 어려운 장애를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장애는 현재 금융기관들이 지니고 있는 부실채권의 규모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대규모부실채권에 대한 일차적인 책임이 금융기관에 있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러나 산업발전을 위해 행해진 정책금융 우선의 금융관행은 우리 금융기관들로 하여금 경제 전반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최종적으로 책임지도록 해 금융문제를 개별 은행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인 문제로 만든 측면이 있다. 이러한 금융기관의 부실한 경영상태가 적절히 관리되지 못할 경우에는 예금인출사태(bank run)를 야기해 금융기관의 신용에 대한 불신을 증폭시켜 건전한 영업활동을 수행하는 여타 금융기관에게까지 악영향을 줄 수 있다. 따라서 현 상황은 신용공황위기를 해소하여 금융안정성을 회복할 조처를 제한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하겠다. 이를 위해서는 은행의 경영상태를 회복시킬 수 있는 가시적인 정부정책이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한 정부의 조치로는 은행의 채권발행이나 증자 등을 통한 영업기반 확대나 영업수행에 있어서의 자율성 확대, 금융기관간의 흡수합병 추진 등을 통한 금융산업구조조정 등의 여러 방법이 있을 수 있으나 이러한 방법들은 현재 진행되고 있는 금융시장의 혼란을 막기에는 시간적으로 부적절한 측면이 있다. 한은특융은 그런 차원에서 금융기관에 대한 단기적 지원을 통해 금융시장에 신용을 회복시키는 일정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현재의 금융시장 불안정성이 자금의 절대적 부족에서 기인하지 않는 만큼 대규모의 한은특융이 필요한 것 같지는 않다. 단지 금융시스템의 불안정성을 방치하지 않겠다는 정부의 의지가 표출되어 금융기관을 중심으로 한 경제주체들간의 신용을 회복하게 할 수 있는 제한적 특융의 실시를 고려해봄직 하다. 이때 금융기관의 자금여력이나 기업부도로 인한 부실여신 규모등은 한은특융 규모를 결정하는 기준으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은특융도 선별적 정책금융의 성격을 갖는 만큼 특융후의 자금흐름을 감독하여야 하는 동시에 차후 이러한 조치의 반복을 막기 위한 장기적인 대책수립도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약력 ▲서울대 경제학과 ▲미 코넬대학 경제학박사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연구원 ◎반대/물가불안·금융기관 도덕적 해이 초래/지원대상 기준모호할땐 특혜시비도/일시적 유동성위기 RP매입 등 바람직/이기영 조세연구원 연구위원 최근 대기업들의 잇따른 부도사태로 말미암아 이들 기업에 대규모 대출을 해준 일부 은행들의 경영상태가 매우 어려운 것으로 전해진다. 이에 따라 이들 은행에 대한 한은특융의 필요성이 거론되고 있다. 이에 대한 판단을 하기 위해 우선 중앙은행의 최종대부자 기능과 한은특융의 선례를 검토해보고 이로부터 시사점을 도출해보자. 중앙은행의 최종대부자(lender of last resort) 기능은 금융위기가 발생하여 경제 전체적으로 유동성이 부족할때 충분한 유동성을 공급해줌으로써 금융제도의 위기를 진정시키는 역할을 의미한다. 선진 각국의 중앙은행들은 금융위기에 직면하여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시장실패(market failure)를 보완하여 금융제도의 안정성을 보장하는 공공재의 필요성을 인식하였으며, 이러한 기능이 바로 중앙은행의 최종대부자 기능을 통해 수행되어야 한다는 점을 터득하였다. 뱅크런으로 표현되는 금융위기를 방지하기 위해 한국은행이 최종대부자 기능을 수행한 가장 대표적인 예가 한은특융이다. 한은특융은 한국은행이 부실해진 금융기관에 장기저리로 자금을 대부해주는 것을 말한다. 한은특융은 1972년 8.3조치에 따른 특별 금융채권의 인수라는 방식을 통해 처음 실시되어 1982년 4월에 폐지되었다가 1985년 해외건설업 및 해운업이 부실화되면서 금융기관들이 상당 수준의 부실채권을 안게되자 그해 7월에 다시 부활되었다. 그리고 1992년에 투자신탁회사 경영정상화를 위해 자금을 지원한 경우도 한 예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우리나라에 있어서 한은특융은 금융시장의 체계적인 교란이나 뱅크런의 징후가 발견되는 시기에 행해진 것이 아니고 이른바 관치금융의 결과 누적적으로 증가한 부실채권으로 금융기관이 위기에 봉착하게 되자 이 문제의 처리차원에서 이뤄진 특징이 있다. 그 결과 단기적으로 부실기업의 도산으로 인한 은행의 부실화(파산)와 그로 인한 금융질서의 교란은 효과적으로 방지했지만, 장기적으로는 도덕적 해이의 문제를 일으켜 금융기관의 대정부 의존도를 심화시킴으로써 금융기관의 체질이 더욱 약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지원대상자 선정에 있어서도 금융제도 전반에 대한 충분한 고려없이 이뤄졌으며 지원내용에서도 명확한 원칙이 확립되어 있지 못했고 임의적으로 이뤄졌다. 결국 한은특융은 선진국의 경우처럼 시장실패로 인한 금융위기를 해결함으로써 금융제도의 안정성을 보장하기 위한 중앙은행의 시장개입이라기보다는 정책금융의 결과 발생한 부실채권으로 금융기관이 부실해지는 정부실패(government failure)가 발생했을때 정부의 비정상적인 금융개입 수단으로 활용된 것이다. 한은특융의 선례를 통해 배울 수 있는 교훈과 시사점은 무엇인가? 무엇보다도 한은의 최종대부자 기능이 제 역할을 하려면 긴급자금지원에 관한 보다 명확한 원칙이 확립되어야 한다. 금융제도의 안정성을 위해서는 한국은행이 위기가 발생하기 이전이나 이후 그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개입할 것이라는 점과 개입할 때의 대상기준을 사전에 공식적으로 알려 민간의 금융제도에 대한 신뢰를 높여야 한다. 누구나 납득할 수 있는 명확한 원칙이 있어야만 한은의 최종대부자 정책이 광범위한 국민적 합의속에 시행될 수 있을 것이며 경제 주체들에게 통화정책에 관한 신뢰를 주어 경제활동의 불확실성을 감소시키고 정책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한은특융은 기본적으로 일반국민들로부터 부실기업과 부실금융기관들에게 소득이전을 초래하는 바, 명확한 원칙없이 이뤄지는 한은특융은 특혜시비를 불식하기 어렵다. 최근의 한은특융 논의는 대상기준에 대한 투명한 원칙의 정립이 되어있지 않은 상태에서 이뤄지고 있어 과거와 같이 특혜시비 등 바람직하지 않은 전철을 되풀이하지 않을까 우려된다. 한은특융의 주체로서 한국은행은 차제에 한은특융의 대상기준 등에 관한 원칙을 주도적으로 설정함으로써 명실상부한 최종대부자로서 금융제도의 안정성 확보를 위한 준거확립(rule­setting)에 앞장서는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다. 과거에 이루어진 한은특융은 관치금융하에서 정부의 정책금융의 결과 빚어진 부실기업 및 부실금융기관에 대해 정부가 책임을 진다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다. 그러나 최근에 나타나고 있는 일부 금융기관의 부실화는 금융자율화가 상당히 진전된 후 금융기관의 자체 심사에 의해 이루어진 여신결정의 결과로서 과거의 전제상황과는 매우 다르다. 따라서 특융이 이루어지려면 지원대상으로 거론되고 있는 금융기관의 강도높은 자구노력이 선행되어야 하나 아직 이에 대한 가시적인 조치도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 뿐만 아니라 한은특융을 지원하려면 금융기관이 유동성부족에 처하는 것은 물론 결제위기에 직면하는 두가지 필요조건을 충족해야 하지만 현재로서는 이같은 상황까지 이르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일시적인 유동성 위기라면 통안채 중도상환이나 환매조건부채권(RP) 매입 등으로 부족자금을 지원할 수 있다. 결국 한은특융은 관련 금융기관과 통화당국이 취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이행하고 난 이후에나 거론될 수 있는 최후의 안전판으로 남겨두어야 한다. □약력 ▲서울대 경제학과 ▲서울대학원 졸업 ▲미 펜실베니아대 경제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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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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