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세종대왕형 대통령을/박원훈 KIST 원장(특별기고)

올해는 세종대왕 탄신 6백주년이라 기념행사도 다채롭다.그리고 올해는 소위 대선의 해다. 언론은 대권에 도전하는 이들의 씨름경기를 중계하는데 온통 정신이 팔려있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모르나 이를 부채질하는 양 「용의 눈물」이라는 사극은 한 과학기술자를 유혹하고 남을 정도로 대작이다. 그러나 내가 이 사극에서 깨우치려 하는 것은 쿠데타에 이어 정치 안정을 이루려는 암투과정이 아니라 세종대왕의 부모와 조부모대의 어떤 역사적 배경이 세종의 치적을 이루게 했는가다. 그러고 보니 나로서는 세종탄생을 고대하고 있는 셈이다. 세종이야말로 한국 문화의 르네상스를 이룩한 분이며 한국 고유의 연구문화를 이룩한 당사자다. 세종시대의 연구문화를 대표하는 것은 집현전이다. 집현전은 근대적 의미에서 국책연구기관이라고 할 수 있다. 집현전의 주목적은 임금에게 학문을 가르치는 경연과 왕세자를 가르치는 서연이 주목적이었으나 문과 급제자를 녹관(정식 연구원)으로 뽑아 임금이 지정하는 사업(국책사업)도 하기에 이르렀다. 집현전이 출판한 대표적인 저작물은 26종인데 그 중에서 농사직설, 팔도지리지, 무원록주해, 향약집성방, 칠정산, 의방유치, 제가역상집 7종이 과학기술과 관련된 것이다. 집현전의 경연은 당시의 성리학 강론 뿐 아니라 현안 문제점에 대한 토론도 자연히 겸하게 되어 오늘날의 국가 자문회의의 역할을 한 것이다. 집현전은 현대의 막료조직이라고 할 수 있다. 자연히 집현전 학자 가운데 정치 현실 참여를 지망하는 경향이 생기게 되어 세종은 이를 개탄하고 일생 학문에 전념할 것을 충고하기도 했다. 세종의 민족문화 창조를 위한 인재 양성에 대한 집념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세종의 과학기술 정책을 현대적인 의미로 해석하면 세종은 집현전이라는 국립연구소의 소장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최고 지도자로서의 집념을 가지고 국책사업을 추진했다는 것이다. 또 상민인 장영실에게 벼슬을 줄 정도로 과감한 인재 등용과 포상 및 투자를 실시하고 연구를 위한 휴가를 줄 정도로 자유로운 연구 분위기를 보장했으며 과학기술의 민족화를 통한 민본주의 실천(예 한글 창제)에 노력했다. 오늘날 박정희전대통령을 닮으려는 용들이 많은 것은 같은 맥락으로 이해된다. 지도자의 치적에는 반드시 공과 과가 있고 또 세월이 지나면 웬만한 과는 잊혀지고 공만 남는 것이 우리의 삶이다. 공만 따질 때 과거 대통령들에 대한 과학기술계의 인기 조사에서 박정희전대통령이 단연 두드러지는 것은 KIST, KDI와 같은 국책 연구소를 설립하여 전문가를 우대하고 헌신적으로 지원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KIST의 부지 선정도 관련 각료를 이끌고 직접 결정을 내렸고 연구소 건설 사업을 독려하기 위해 어떤 때는 한달이 멀다하고 건설 현장을 방문했다.(업무에 방해된다고 하여 연구원들에게는 알리지도 않고) 과학자들을 해외에서 유치하기 위해 파격적인 대우와 함께 연구소 운영의 자율성을 보장하기 위해 외부 감사를 일절 금하고 자체 감사로만 그치게 하는 등 지금 생각해도 정말 어려운 용단을 내릴 수 있었던 분이다. 최소한 세종대왕을 닮으려 했던 지도자라고 할 수 있다. 현직 대통령이 투자하면 그 효과는 다음 대통령이 거두는 정책 중의 하나가 과학기술이다. 그래서인지 과학기술 이야기를 하는 대권 주자는 찾기 힘든 것 같고, 있어도 과학기술에 대한 애정은 미지근한 것 같다. 21세기는 과학기술력이 국가 경쟁력을 좌우한다는 사실에는 모두가 공감하고 또 그렇게 주장하면서도 가슴에 와닿는 확신을 심어주는 대권 주자를 찾기 힘들다. 그것은 당면한 현안 과제가 너무 많아서라기보다 세종과 같이 백성과 나라를 위해 멀리 내다보는 지도력을 기르는데는 시간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다음 대통령은 21세기의 대통령이 된다. 고난의 역사를 뒤로 하고 민족문화를 꽃피울 수 있는 세종대왕과 같은 대통령을 선출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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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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