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산업 43% 진입규제… 업종다각화 저해『시장경제기능에 장애가 되는 정부규제는 모두 털어내야 한다.』(강경식 부총리겸 재정경제원장관 취임 인터뷰) 『경기가 침체에 빠져 있을 때야말로 구조조정의 적기다. 인위적인 경제회생정책보다는 경제주체들이 각자 맡은 분야에서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시장경제원리를 따를 것이다.』(김인호지난 3월 당시 공정거래위원장)
『구조적 불황에 허덕이는 우리 경제를 회생시킬 수 있는 해법은 시장경제 원리의 활성화』라는 화두는 한동안 재계의 전유물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아니다. 지난 3월 출범한 새경제팀은 취임 일성으로 한결같이 「시장경제 원리」를 강조했으나 그 의지는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한보를 시작으로 대기업의 부도가 이어지자 「부도방지협약」이 생겨났고 현대그룹의 제철사업 참여에 대해서는 공급과잉을 이유로 허가신청도 하기 전에 불허판정이 내려졌다. 최근에는 「산업합리화」를 연상시키는 삼성자동차의 「구조조정 보고서」 파문으로 과거 「관치경제」의 망령이 되살아나는 듯한 분위기다.
재계는 『모든 산업의 구조조정은 국가경쟁력 차원에서 민간 자율로 추진돼야 한다』(지난 12일 전경련 회장단회의)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재계에서는 『여전히 규제완화의 성역으로 남아 있는 공정거래법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없는 한 경제회생은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할 것』이라고 기회있을 때마다 말한다. 불황을 새로운 기회로 삼기 위해서는 구조조정이 활성화돼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경제력집중 억제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공정거래법의 기능을 경쟁촉진 중심으로 전환시키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국경제연구원 이재우연구위원은 『높은 인허가 장벽과 시장진입·퇴출장벽, 기존 기업에 대한 독과점 시장구조 등을 과당경쟁 방지나 공공성 보호라는 명분으로 제도화하는 경향이 있다』며 『이는 시장의 비효율을 산업규제로 해결하려는 잘못된 정책의 전형』이라고 강조한다. 그는 진입규제에 대한 연구결과 우리나라는 전체 산업(1천1백95개) 가운데 43.6%인 5백33개 산업이 진입규제를 받고 있으며 정부에 의한 가격 및 비가격 규제는 기업의 간접적 담합을 조장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이와함께 재계는 경제력 집중에 대한 지나친 정부 간섭은 기업들의 자율적인 사업다각화를 저해할 뿐 아니라 부실기업 정리와 신규산업 진출을 어렵게 해 불황의 자정기능을 저해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손병두전경련부회장은 『금융기관이 빚보증을 요구하는 것은 수십년간 내려온 관행인데 계열회사 사이의 빚보증을 없애려는 채무보증 제한조치와 공동행위에 대한 「포괄적인」 금지를 규정하고 있는 공정거래법은 기업활동을 크게 제약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아무 근거도 없이 30대그룹이란 이유로 각종 제약을 받아야 하는 공정법의 「대기업집단 지정요건」에 대해서도 이제는 과감한 인식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그렇다고 재계가 공정거래법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내부자거래나 독점적 지위를 이용한 불공정한 행위에 대해서는 엄정하게 처벌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이다.
또한 불공정한 담합이나 경쟁을 저해하는 기업의 행위는 처벌돼야 한다. 다만 법 운용에 대한 기본인식이 바뀌어아한다는 주장이다.
이에대해 공병호 자유기업센터소장은 『공정거래법의 목적은 경재력집중 억제가 아니라 소비자 후생의 극대화에 초점이 맞추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즉 경제력집중 억제라는 한국적 인식의 틀에서 벗어나 무엇이 우리 경제의 희생과 소비자 이익에 합치되는지를 다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공정법에 대한 인식전환은 미국이나 일본 등 선진국에서도 나타나고 있다.미국은 최근 독점규제법의 원조라 할수 잇는 반트러스트법의 운용에서 자동차업체인 크라이스러에 대해 정부차원의 지원을 하도록 했으며 자동차,철강,반도체,섬유산업에 대해서는 자율규제,쿼터 등으로 외국제품의 진출을 상당부분 막아주기도 했다.특히 최근 항공산업 불황기에 대응,보잉사와 맥도널더글러스사의 합병을 허용한 것은 주목할 만한 사례다.
결국 공정거래법은 경제력 집중이라는 소극적이고 제한적인 측면보다 시장경제 활성화와 경쟁촉진을 통한 국익증대라는 적극적·대국적 견지에서 운용할때 불황에 빠진 경제를 살릴수 있다는 것이다. 재계는 이를 『멀지만 반드시 가야할 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민병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