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하게 흘러가는 듯 보였던 호수가 파문에 휩싸였다. 처음 돌을 던진 이는 최은배(45ㆍ사법연수원 22기) 인천지법 부장판사다. 그는 지난달 22일 국회가 비준동의안을 기습처리하는 것을 보고 페이스북에 '대통령과 통상관료들이 나라를 팔아먹었다'고 적었다. 사적인 글이었지만 언론에 보도되면서 수면 위로 떠올랐다. 다만 워낙 감정적인 글이라 소수의 강성 발언으로 치부되는 듯했다. 그러나 뒤이어 법원 내부망인 코트넷에 김하늘(43ㆍ22기) 인천지법 부장판사가 몰고 온 강력한 파고가 찾아왔다."국민적 논란인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투자자 국가소송제도(ISD) 조항에 대해 법률의 최종적인 해석권한을 갖고 있는 사법부가 가이드 라인을 제시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틀 만에 A4용지 6매에 달하는 그의 글에 170명을 웃도는 현직 판사들이 동의했다. 김 부장판사는 약속대로 대법원에 협정문의 법적 검토를 위한 태스크포스(TF)팀을 만들어달라는 청원문 작성에 들어갔다. 그의 글은 보수적 성향이 강한 법관들을 움직였다. 찬반이 아니라 법률 전문가로서 품은 합리적 의문이 담겼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정치적 지향점을 '보수'라고 떳떳이 밝히기도 했다. 또한 한미 FTA를 꼼꼼하게 살피려 해도 충분한 연구가 없었다는 사실도 꼬집었다. 무엇보다 그는 무턱대고 한미 FTA에 반대하는 이들도 설득할 수 있는 사법부의 권위를 믿었다. 법안이 입법부의 손을 떠난 이상 사법부가 제 목소리를 내야 할 때라는 법조계의 공감도 이어졌다. 대법원은 불쾌한 기색이다. 지난 2일 양승태 대법원장은 "선비는 오얏나무 아래서 갓끈을 고쳐 매지 않는다는 옛말처럼 법관은 항상 조심하고 진중한 자세로 자신을 도야하고 성찰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파문이 커지는 것을 놔두지 않겠다는 의지로도 읽혔다. 이번 파문이 불쑥 튀어나온 돌출행동으로 치부돼 유야무야 잦아들지, 아니면 사법부 차원에서 구체적인 입장을 밝히는 데까지 나아갈지는 두고 볼 일이다. 확실한 것은 이번 사안에 쏠린 국민의 관심이 만만치 않다는 점이다. 사법부의 신중한 접근이 필요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