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목요일 아침에] '블랙아웃' 재앙을 막는 길


사람은 잘 잊는다. 특히 한국인의 망각 습성은 유명하다. 아무리 경천동지할 사건이라도 조금 지나면 흐지부지되기 일쑤여서 '사회적 기억'이 빈약하다거나 '학습효과가 떨어진다'는 비난을 듣기도 한다. 그러나 절대 망각해서는 안 될 것도 있다. 지난달에 겪었던 사상 초유의 '순환정전 사태'와 그에 따른 엄청난 고통도 그런 것 중의 하나다. 평소 고마움은커녕 존재감조차 잊고 있던 전기가 갑자기 끊기자 세상은 순식간에 암흑천지가 됐다. 병원에서는 치료를 할 수 없어 사람의 목숨이 위협받는가 하면 수족관의 고기들이 떼죽음을 당하기도 했다. 세상 모든 것이 일시에 마비되는 '치명적 충격'이었다. 순환정전 사태는 예고된 人災 두 번 다시 당하기 싫은 재앙이라면 마땅히 그 원인을 밝히고 대책을 세워야 한다. 원인을 놓고 다양한 의견이 있지만 요약하면 전력공급 능력을 위협할 정도로 전력소비가 폭증한 결과다. 구체화하면 '터무니없이 저렴한 전력요금과 전력생산능력의 부족이 만들어낸 예고된 인재'라는 게 다수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보고체계상의 혼선 등은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다. 핵심적인 것은 당시 예비 전력율이 위험수위로 떨어졌고, 매뉴얼에 따라 순환정전이라는 긴급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이다. 전국단위 '블랙아웃'의 대재앙을 간발의 차이로 피한 것에 안도해야 할 상황이다. 예비전력이 위험수위로 떨어지게 된 원인으로 예기치 못한 늦더위와 관련해 전력 수요예측이 잘못됐다는 점을 든다. 그러나 지구온난화에 따라 변덕스러워지는 기후도 문제지만 전력요금이 너무 싸 소비에 영향을 못 주는 상황에서 수요예측은 별 의미가 없다. 올해 정부가 내놓은 최대 전력수요 예상치가 실제보다 50만㎾나 밑도는 것은 전력예측의 어려움을 보여주는 좋은 예다. 예측실패를 문제 삼을 것이 아니라 전력수요 예측이 안 맞는 근본원인은 수요가 늘고 생산원가가 올라도 꿈쩍 않고 있는 값싼 요금이라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실제 국내 전기요금은 세계에서 가장 싸다. 지난 25년간 물가는 300%나 오른 데 비해 전기료는 겨우 10% 상승에 그쳤기 때문이다. 특히 국내 전력소비의 53%정도를 차지하는 산업용 전력의 경우 발전원가에도 못 미치고 있다. 국내 전기요금을 100으로 봤을 때 일본은 266원, 미국은 117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은 184원이다. 가정용이 상대적으로 비싸 기업에 막대한 보조금을 주는 꼴이나 다름없는 잘못된 요금체계도 문제다. 이처럼 헐값인 전기를 물쓰듯 한다고 해서 이상할 것도 없다. 최고급 에너지인 전기를 이처럼 값싸게 공급하고 낭비를 부추기면서 에너지 절약, 녹색성장을 외치는 것은 공허하다. 전기료의 현실화와 요금체계 개선을 통해 전기 과소비를 막는 것이 블랙아웃의 재앙을 피하기 위한 일차적인 대책이다. 고효율 청정에너지 원전이 해법 또 하나 중요한 과제는 전력공급 능력을 최대한 빨리 늘리는 것이다. 전기요금이 물가를 비롯한 국민생활에 큰 영향을 준다는 점에서 현실화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전력생산 능력을 대폭 확충하는 것이 대안이다. 증가하는 전력수요를 감당하고 블랙아웃 방지를 위해 선택의 여지는 별로 없다. 무엇보다 시급한 것은 현재 6.6%에 불과한 발전설비 예비율을 최소 15%이상으로 높이는 일이다. 현실적으로 이를 달성할 수 있는 방법은 추진 중인 원전건설을 차질 없이 마무리하고 추가건설을 위한 부지확보 등 준비에 착수하는 것이다. 우리가 질 좋은 전기를 값싸게 쓰고 있는 것은 전력생산의 31%정도를 담당하고 있는 원전 덕분이다. 세계 최고수준의 원전기술과 관리능력을 감안할 때 일본 후쿠시마 사태 이후의 분위기를 오히려 원전강국으로 도약하는 기회로 활용하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두 번 다시 정전의 재앙이 싫다면 무책임한 반대나 억지를 단호하게 물리쳐야 한다. 그리고 임시방편이 아닌 원칙에 충실해야 한다. 전기료 현실화와 고효율 청정 에너지 원전건설이 그 해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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