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 4월 17일] <1673> 도쿠가와 이에야스


아내를 처형하고 장남에게 할복을 명령한 냉혈한. 숙부를 의심하고 사돈과 손녀사위까지 공격한 패자(覇者). 춘추전국시대와 조선침략으로 어수선했던 시대를 마무리하고 일본의 근세를 연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의 면면이다. 대하소설 '대망(야마오카 소하치 작)'의 주인공으로도 도쿠가와의 인생은 파란만장 그 자체다. 1543년 다이묘(大名ㆍ영주)의 장자로 태어났으나 6세부터 13년을 인질로 살며 고비마다 강자를 만나 굴종하며 때를 기다린 끝에 천하(일본)를 얻었다. 난세에서 살아남아 뜻을 이룬 원동력은 두 가지. 사람과 인내다. 배가 고파도 가신들을 먹였으며 언제나 참았다. '인내는 무사장구의 근원, 분노는 적'이라는 명언도 남겼다. 도쿠가와가 기억되는 가장 큰 이유는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일본의 밑바탕을 형성했다는 점. 일본 대사를 지낸 라이샤워 교수는 '일본제국 흥망사'에서 '일본의 번영은 도쿠가와 막부의 탄탄한 기반 덕분'이라고 평가했다. 조선에서도 일본 국왕으로 인정받은 그는 여느 무장들과 달리 경제에도 힘을 쏟았다. 도쿠가와의 도로 정비와 상업 권장, 금광과 은광의 직할령화를 통한 금은 화폐제도 도입 같은 경제적 업적이 없었다면 일본 근세 이후의 평화와 급속한 서구화도 불가능했을지 모른다. 거대도시 에도(도쿄)도 그가 건설한 것이다. 도쿠가와를 그린 기묘한 그림이 하나 있다. 전재산을 날린 투자자처럼 황망하고 수심에 찬 표정의 주인공은 다케다 신겐의 기마군단에 대패한 직후인 31세의 젊은 도쿠가와다. 1616년 4월17일, 75세로 사망할 때까지 그는 참담했던 순간의 그림을 옆에 두고 스스로를 가다듬었다. 동서고금을 통틀어 자신의 가장 어려웠던 시절을 그림으로 그려 새긴 지도자는 유일무이하다. 자기성찰에 그만큼 충실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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