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우량회사채 '씨' 말랐다

신규채 발행않고 조기상환위해 '수거'작업<BR> 그나마 발행기업도 연기금등서 입도선매

회사채시장이 ‘통계의 함정’에 빠져들고 있다. 겉으로는 발행물량이 확대되면서 활발하게 거래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물량이 부족해 빈사상태에 허덕이고 있다. 그나마 발행하더라도 연기금 등 대형기관들이 눈에 띄는 족족 거둬들이고 있고 우량 기업들 역시 채권발행보다는 회수에 주력하는 모습이다. 이 때문에 채권시장에서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우량 회사채를 찾기가 쉽지 않다. ◇ 회사채시장 제 기능 못한다 = 가장 심각한 문제는 회사채 물량 자체가 없다는 데 있다. 삼성전자ㆍ포스코ㆍ신세계 등 우량 기업들은 막강한 현금량을 주체하지 못해 회사채를 발행하지 않을 뿐 아니라 어쩌다 발행한다 해도 시장에 나오기 무섭게 대형기관이 싹쓸이해간다. 특히 연기금 등이 안정성 위주의 투자성향을 강화하면서 시장에서는 회사채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보다도 어렵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다. 최근 회사채 발행이 투자등급의 가장 아래 단계인 BBB에서도 활발하게 이뤄지는 모습을 보이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물량부족에 허덕이던 기관들이 수요처를 찾아 ‘하향지원’을 하는 셈이다. 특히 최근에는 발행회사에서 증권사 등에 회사채 발행을 문의하기보다는 증권사에서 기업을 찾아다니며 회사채를 발행해달라고 하소연하는 역전현상마저 나타나고 있다. 한 증권사의 채권딜러는 “일부 대기업의 경우 회사채 조기상환을 위해 보유기관을 찾아다니며 ‘수거’작업을 하기도 한다”며 “그나마 발행하는 기업도 연기금 등에서 입도선매를 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설명했다. ◇ 대기업 ‘신용등급 필요 없다’ = 회사채나 CP를 발행하기 위해서는 신용등급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대기업들이 회사채 발행을 외면하면서 신용등급 없는 기업도 속출할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전자의 경우 이미 신용평가기관에 더이상 기업의 신용등급 유지를 위한 평가를 받지 않겠다고 통보한 상태. 신용평가기관의 한 관계자는 “삼성전자에서 올초 더이상 로컬등급(국내 신용등급)은 필요 없다는 의사를 밝혀왔다”며 “등급만료인 오는 10월이 되면 삼성전자의 국내 신용등급은 사라지게 된다”고 설명했다. 또 잔존 회사채 물량이 극히 적은 삼성전기나 삼성SDI 역시 조만간 신용등급 심사를 받을 필요가 없게 될 전망이다. 결국 시간이 지나면 주요 대기업 상당수가 직접자금조달시장에서 완전히 발을 뺄 것으로 예상된다. 회사채시장이 정상적인 시장의 모습을 잃게 되는 것은 그 다음 수순이다. 또 다른 증권사의 채권발행 담당자는 “초우량 기업들의 경우 1~2년 전부터 신규채를 발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시장에 직접적인 타격은 없을 것”이라면서도 “하지만 시장의 바로미터가 사라진다는 점에서 부정적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송영규기자 skong@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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