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시련딛고 희망낚자/임금줄이더라도 ‘공생’ 직원사기 높이고/불황일수록 공격적 경영… 경쟁력 제고/제살깎기 경쟁·모방광고 지양 질로 승부97년의 광고계는 「참담함」 그 자체였다. 지난해말부터 이어진 극심한 경기불황과 대형 광고주들의 잇따른 도산은 광고시장을 얼어붙게 만들었고, 결국 마이너스 성장이라는 업계 초유의 결과를 불러왔다. 업체마다 조직정비, 인원축소, 사업다각화등을 펼치면서 나름대로 경기침체에 대비했지만 광고주들의 광고비삭감이라는 높은 벽에 부닥치며 끝내 좌절을 맛봐야만 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이게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데 있다. IMF한파에서 광고계도 예외는 아니기 때문이다. 강펀치를 맞고 비틀거리던 선수가 또다시 맞아 KO직전의 그로기 상태다. IMF한파의 여파는 벌써 곳곳에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광고회사의 젖줄인 광고주들은 내년도 광고비를 대폭축소는 물론 아예 중단하겠다는 방침이며, 광고회사들은 생존을 내세워 대량감원의 칼을 휘두를 채비를 하고 있다.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매트에 누워버린 광고업계의 98년은 실로 참담함을 넘어 절망의 깊은 늪에 빠지는 꼴이다. 하지만 세계 7위 규모의 광고대국이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다는 인식 또한 높다. 속수무책이라 한들 몸부림이라도 한번 쳐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시련속에서도 길은 있듯이 IMF한파라는 절망의 늪에서 희망을 낚기 위해서 필히 재고되어야 할 것들을 살펴본다.
◇감원이 능사는 아니다=IMF의 된서리를 맞은 광고회사들의 최우선 방어책은 대량감원이다. 무슨 업체는 간부 몇명을 짤랐다느니, 어떤 회사는 수십명에게 해고통지서를 보냈다든지하는 확인되지 않은 이야기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다. 심지어는 업체별로 감원리스트가 돌고 있을 정도. 직원들의 동요가 심각한 수준에 와 있다는 것은 뻔한 이치다. 한 업체의 AE는 『최근 직원들 2∼3명만 모여도 화제는 온통 감원』이라며 『직장에서 일손이 잡히지 않을뿐 아니라 잠도 오지 않는다』고 불안해했다. 또다른 회사 관계자는 『감원만이 해결책의 전부는 아니다』면서 『임금이 줄어들더라도 함께 사는 방법을 강구해야지 사원들의 기를 꺾는 감원은 사실상 회사 경쟁력을 상실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생존을 위한 무차별 감원은 남아있는 직원들에게까지도 애사심을 없앴을 뿐더러 동료애, 일에 대한 열정등 회사발전의 원동력을 저해할 것이라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공통된 생각이다. 언제 짤릴 지 모르는 상황에서 회사를 위한 일방적인 희생은 더이상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더구나 광고산업은 직원들의 창조력으로 먹고산다.
◇광고비 대폭삭감은 재고돼야 한다=올해 1천억원에 가까운 광고비를 쏟아부은 삼성전자는 내년엔 3∼4백억원 수준으로 대폭 줄인다는 방침이다. 더 줄일 가능성도 있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진로 OB 조선맥주등 주류회사들은 최근 모임을 갖고 3백억원 수준의 각사 광고비를 1백억원대로 하향조정할 계획이라고 선언했다. 뿐만 아니다. 자동차, 화장품, 식품, 정보통신등 알짜배기 광고주들이 잇따라 경비절감을 이유로 많게는 전년대비 10분의 1수준까지 광고비 대폭삭감을 주장하고 나섰다. 심지어는 광고를 아예 집행하지 않겠다는 곳도 부지기수다. 직원들 월급주기도 빠듯한데 광고할 돈이 어딨냐는 것이 이들 생각이다. 광고업계에 엄청난 타격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불황을 이기기 위한 수단으로 대폭적인 광고비절감은 기업입장에서도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업계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미국이나 일본등 불황과 관련한 광고논문에 따르면 깊은 불황에 시달린 1등회사가 경비절감차원에서 광고비를 대폭삭감한 경우가 있었다. 반면 2위업체는 이를 호기로 삼고 오히려 광고비를 늘려 소비자에게 강하게 다가섰다. 결국 순위는 뒤바꼈고, 2위로 처진 업체는 전세를 만회하기 위해 예전보다 더 많은 광고비를 투입했으나 결국 따라잡지 못해 끝끝내 뒤처지고 말았다. 영원한 1위로 남을 것이냐 2위로 전락할 것이냐 곰곰히 생각해 볼 대목이다.
◇경영진의 인식전환이 필요하다=외형성장을 위해 이것저것 벌려놓은 한 업체는 최근 상당한 경영적자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 회사관계자는 『최고 경영진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올해초 세운 목표를 맞추라고 밀어부쳐 성장한계를 보인 방송 신문등 4대매체 외에 승부를 걸 수 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광고업계가 그동안 수익성보다 외형성장을 중시했다는 설명이다. 내실보다 경쟁을 우선했기 때문이다.
사실 광고업계 부실의 원인도 따지고 보면 무리한 외형성장을 지향해온 경영진에게도 책임이 있다. 올해 초 B업체는 지난해보다 두배 가까운 몸집을 불리겠다고 공표했다. 이를 전해들은 다른 경쟁업체도 부랴부랴 당초 내놓은 목표를 상향조정, 결코 밀릴 수 없다고 덤볐다.
목표달성이 어렵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억지로 꿰맞추어 나가다보니 부실발생은 당연하다. 결국 제살깎기식 경쟁과 무리한 사업확장은 어쩔 수 없이 사원들을 내몰아내야 하는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강한 풍랑을 맞은 배는 선장을 주축으로 모든 선원이 합심해야 무사히 헤쳐나올 수 있다. 선장의 선택에 따라 배의 운명이 달려있는 것이다. 선장의 올바른 지도력이 필요하다.
◇질로 승부해야 한다=국내 광고시장 규모는 약 6조원, 대행사 2백여개. 세계 7위의 광고대국이다. 30년동안 평균 20% 이상의 고공비행을 계속하며 비약적으로 발전한 결과다. 그러나 이는 양적인 수치다. 질적수준도 양적 규모에 부합하는지는 사실 의문이다.
그동안 국내광고는 모방 표절등 베끼기광고에 너무 익숙해왔다. 잘 알려진 유명광고의 반 이상이 외국광고와 연관있다는 이야기가 정설처럼 떠돌고 있다. 심지어 크리에이티브가 뛰어난 작품은 한번쯤 의심을 품어야한다는 말도 들린다.
물론 이것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척박한 환경에서 광고산업을 이만큼 끌어올리려면 외국사례를 열심히 분석하고, 그들의 노하우가 필요했다. 어쩌면 모방 표절은 광고의 빠른 정착을 위한 우리로서는 당연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시간이 없어서, 광고주가 재촉해서라는 더이상의 변명은 소용없다는 것. 자신만의, 한국적인 크리에이티브 연출이 충분할정도의 기본바탕이 갖추어져 있다. 양심을 속이는, 소비자를 두려워하지 않는 광고는 이제 사라져야 한다는게 광고계의 한결같은 소리다.<홍준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