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이슈 인사이드] 지나친 충성심일까… 부정 퍼뜨리는 썩은 사과일까…

■ 실적 올리려 개인 돈 쓰는 회사원<br>거짓 계약·매입 대금 대납·고가 선물 등 다양<br>일부 기업선 부정행위 적발 위해 암행 감찰 실시<br>"얼마나 스트레스 받았으면…" 동료들은 동정표

실적으로 모든 것을 말해야 되는 회사원에게 목표 미달은 실직을 의미한다. 개인 돈까지 써가며 마감 목표치를 맞추는 데 대해 회사 동료들은 어쩔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며 동정한다. /서울경제DB



지나친 충성심? 썩은 사과? 씁쓸한 현실
[이슈 인사이드] 지나친 충성심일까… 부정 퍼뜨리는 썩은 사과일까…■ 실적 올리려 개인 돈 쓰는 회사원거짓 계약·매입 대금 대납·고가 선물 등 다양일부 기업선 부정행위 적발 위해 암행 감찰 실시"얼마나 스트레스 받았으면…" 동료들은 동정표

김경미기자kmkim@sed.co.kr














실적으로 모든 것을 말해야 되는 회사원에게 목표 미달은 실직을 의미한다. 개인 돈까지 써가며 마감 목표치를 맞추는 데 대해 회사 동료들은 어쩔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며 동정한다. /서울경제DB

















‘과열된 충성’일까 ‘부정 퍼뜨리는 썩은 사과’일까

대기업 계열 보험사에 다니는 S씨는 한 때 일 잘하는 직원으로 사내에서 유명했다. 팀 지표가 악화된 순간마다 계약을 따와 영웅 대접을 받은 것은 물론 개인 성적도 출중해 몇 번이고 사내 우수 직원 명단에 이름을 올리곤 했다.

승승장구하던 그가 추락한 것은 말 그대로 순간이었다. 사내 감사에서 그의 부정 행위가 대거 적발돼 권고사직 권유를 받은 것이다. 그는 그 동안 지인의 이름만 빌리고 돈은 자신이 결제하는 식으로 실적을 올렸고 수년간 쓴 돈만 4,000만원이 넘는다고 했다.“비록 부정한 방법이긴 했지만 회사에 이익을 줬으면 줬지 손해를 끼친 것은 없다”며 완강히 버텨봤지만 “남아봤자 더 이상 성공 못한다. 대신 지금 그만두면 이 모든 사실을 다 비밀로 해 다른 회사에 가더라도 불이익을 받지 않게 해주겠다”는 달램에 결국 회사를 그만두는 방향을 택했다.

많은 직장인들에게 S씨의 이야기는 결코 낯설지 않다.

대부분의 회사에서는 직원이 별다른 보고 없이 자신의 돈으로 손해를 메우는 등으로 일을 무마시키거나 거짓계약을 작성하는 등의 부정행위를 엄격히 금지하고 있지만 실적을 위해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직장인이 적지 않은 것이다.

서울경제신문이 잡코리아에 의뢰해 직장인 137명을 대상으로 설문을 실시한 결과 실적을 올리거나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개인적으로 비용을 지출해 본 적 있다고 답한 응답자가 전체의 38.7%를 차지했다. 10명 중 4명꼴인 셈이다.

이 같은 행위는 실적이 중요시되는 직군 등에서 오랜 기간 고질적으로 이루어지곤 했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증언이다. 업계의 속살을 조금만 들여다봐도 비슷한 사례가 줄을 잇는다.

국내 제약사 한 영업담당자는 “약국에 들어가는 일반의약품의 경우 약사에게 이번 달 주문량을 좀 더 늘려달라고 부탁하거나 돈을 주고 약국 이름만 빌려 사두는 경우가 여전히 종종 있다”며 “별 잡음이 없이 넘어간다면 아무 문제 없지만 거래처와 트러블이 생기는 경우 징계를 받는다”고 설명했다.

증권업계 한 관계자도 “지점 직원들은 수수료 실적으로 평가 받는데 갓 입사한 신입사원에게 누가 믿고 돈을 맡기겠냐”며 “가족이나 친인척, 지인들에게 부탁할 수밖에 없는데 손해가 날 경우 자신의 돈으로 보충해 주는 경우를 종종 봤다”고 전했다.


영업사원의 판매수수료가 높은 자동차회사나 보험사의 경우 직원이 자기의 수수료에서 일정 금액을 떼어 매입대금이나 보험료 1~2회 분을 대납해 주는 경우도 많다. 내 실적을 채워주는 대신 내가 받을 수수료까지 주겠다는 의미다. 고가의 선물 보따리를 안기는 것도 크게 보면 매한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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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 부정은 조직적인 방식으로도 이뤄진다. 회사가 이런 부정행위를 뻔히 알면서도 실적을 위해 눈감아주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보험회사 영업직에 있는 한 직장인은 “월 마감날 목표치가 아슬아슬하게 모자랄 경우 부장이 팀장을 조용히 불러 ‘그리기(가짜 계약 작성)’를 시킨다”며 “한 두건 정도야 위에서도 발견하기 힘들어 모르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지만 나중에 발각될 경우 아래 직원들이 고스란히 떠 안을 수밖에 없는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제약업계 관계자 역시 “외국계 제약사의 경우는 한번이라도 리베이트를 주다가 걸리면 바로 해고를 하는 등 엄격한 조치를 하지만 국내 제약사는 그 정도로 징계가 엄격하지 않다”며 “원칙적으로는 리베이트를 하지 말라는 입장이지만 직원 입장에서는 요령껏 하라는 말로 들린다”고 터놓았다.

물론 대부분의 기업들은 이 같은 부정 행위를 엄격히 금지하고 있으며 근절시키기 위해 여념이 없다. 간혹 회사에 대한 지나친 충성심이 화를 부른 경우도 많아 아쉽지 않은 건 아니지만 그대로 둘 경우 더 큰 손실을 가져올 수 있다는 입장이다. 한 대기업 인사담당자는 “한 사람이 정직하지 못한 방법으로 실적을 올리고 그에 따른 보상을 받으면 다른 사람도 그를 따라 한다”며 “작은 부정이라도 싹을 잘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윤리경영이 화두가 되면서 과거 구두 경고 혹은 인사상 약간의 불이익 정도로 그쳤던 징계 수위가 해직ㆍ해임 등으로 높아지기도 했다.

일례로 지난해 현대자동차는 정가판매제도를 도입하며 이를 따르지 않을 경우 대리점에 지급되는 보조금을 삭감하는 등의 징계조치를 하겠다고 밝혔다. 영업사원이 자신의 판매수당에서 일정액을 지출해 선물이나 할인을 해주는 식의 방식을 전면 금지시킨 셈이다.

쌍용자동차 역시 정찰제 판매를 어길 경우 최고 대리점 폐쇄까지 하겠다고 못박아둔 상황이며 한국지엠은 회사 방침과 어긋나는 방법으로 자동차를 판매할 경우 격려금이나 지원장려금을 주지 않는 식으로 페널티를 부과한다. 부정 행위를 적발하기 위해 암행감찰 등도 실시한다고 한다.

부정행위자들을 바라보는 동료들의 시각은 어떨까. 속임수를 써 다른 이가 받았어야 할 영광을 훔친 것이라는 의견도 있지만 대부분은 “얼마나 실적 스트레스가 쌓였으면 그랬겠냐”며 동정표를 보내는 경우가 다수다. 부정행위를 저지를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아넣은 회사의 잘못이라는 비판과, 오랜 기간 묵과해오다 이제와 회사 이미지만을 신경 쓰며 꼬리를 자르는 것이라는 비난도 쏟아진다.

대기업 계열 금융사에 다니는 한 직장인은 “죽을 힘을 다 해 이번 달 목표치를 맞춰 놓으면 다음달에는 이 정도는 쉽겠다 판단한 건지 목표가 더 올라가 있다”며 “어떻게든 목표 맞추라고 압박하는 상사를 볼 때마다 이건 속임수든 범죄든 무슨 수를 써서라도 해오라는 말로 밖에 들리지 않는다”며 허탈해했다.

숫자 위주로 평가되는 현재의 기업 문화가 개선되지 않는 한 이런 문제는 사라지지 않으리라는 의견도 많다.

한 직장인은“아무리 정석으로 10건의 계약을 달성해도 위에서 보면 나는 결국 목표치를 못 채운 직원에 불과할 뿐”이라며 “숫자만이 아니라 근무태도나 성실성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하는 지표를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기업 한 고위간부 역시 “직원들의 부정을 잡아내는 감사팀도 연간 400건, 500건이라는 식으로 목표치를 할당 받아 일한다”며 “그 해 부정행위를 저지른 직원들이 많다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자잘한 행동까지 억지로 부정으로 몰아붙이게 되는 경우도 생기게 되는데 이건 정상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김경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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