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 FIFA의 꼼수

“이게 말이 됩니까? 그동안 아무 연락도 없다가 월드컵이 시작되고 나서야 갑자기 그런 요구를 하다니요.” 한 유통 업계 관계자의 하소연이다. 며칠 전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 전국 매장에서 신나는 단체응원전을 펼칠 계획이니 가까운 매장에서 맥주나 한잔 하면서 함께 응원하자고 했던 지인이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 만난 그는 모든 행사를 취소했다며 연신 한숨만 내쉬었다. 독일월드컵을 맞아 전국 점포에서 대규모 단체응원 행사를 준비했던 백화점ㆍ할인점ㆍ쇼핑몰 등 유통 업계는 최근 대부분 행사를 취소했다. 국제축구협회(FIFA)의 대행사인 에스엔이미디어앤드마케팅(SnE Media & Marketing)사가 느닷없이 단체응원 행사에 500만~5,000만원의 시청권료를 요구했기 때문이다. FIFA가 이번 월드컵에 장외 시청권을 엄격하게 적용하기로 한 것은 사실 지난 2002년 길거리를 붉은 물결로 장식했던 한국인들 때문이다. FIFA는 2002년 한일월드컵 때 남녀노소가 길거리로 쏟아져나와 대형 전광판 앞에서 열정적인 응원을 펼치던 한국인들을 보고 땅을 쳤을 것이다. 공공장소에서 2명 이상이 월드컵 경기를 볼 경우 FIFA에 시청권료를 지불해야 하는 장외 시청권을 엄격하게 적용했으면 ‘대박’이 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그들은 이번 대회부터 장외 시청권이라는 칼날을 휘두르기로 했고 FIFA와 대행사는 그 칼날의 존재를 월드컵이 시작되고 나서야 각 기업들에 ‘엄중히’ 알렸다. 이에 따라 동네 맥줏집이나 식당에서 월드컵을 즐기는 국민들 사이에는 “이거 불법 아니야”라는 농담이 오가게 됐고 ‘우리는 공범’이라는 불쾌한 연대감마저 생기는 현상이 나타났다. 월드컵의 공식후원사로 등록하려면 막대한 후원금을 내야 한다. 중계권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장외 시청권에도 그만큼의 재산적 권리가 있다는 점은 분명히 인정한다. 문제는 FIFA와 대행사의 속 보이는 장삿속이다. 기업들에 미리 장외 시청권에 대해 설명하고 국민들에게 관련 내용을 알렸다면 이번 같은 혼란과 찝찝함은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월드컵이 시작된 이후에야 이 같은 사실을 기업에 알렸고 언론에 의해 공론화됐다. FIFA가 길거리 응원 행사를 모두 준비해놓은 상태에서 갑자기 취소할 경우 기업 이미지에 막대한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는 기업들을 압박해 돈을 받아내려 했다는 의혹은 기자만의 생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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