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현대차, 질주본능을 깨워라]<하>시장이 쫓아오게 만들어야

시트 재질·소리·향기등도 구매에 영향 "감성품질을 높여라"


올 초 현대자동차 미국 현지법인(HMA)과 현지 마케팅ㆍ광고 대행사인 ‘굿비, 실버스타인 앤 파트너스(Goodby, Silverstein & Partners)’는 고객 200명을 대상으로 신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베라크루즈’에 대한 블라인드 테스트를 실시했다. 자동차 품질에 대한 제대로 된 평가를 받아보자는 의도였다. 테스트 결과가 의미심장했다. 브랜드를 보지 않은 고객의 71% 정도가 베라크루즈 구매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현대 로고를 보여주자 구매희망자는 52%로 뚝 떨어졌다. 반면 같은 조건에서 도요타 로고는 구매력을 20% 이상 끌어올리는 결과를 보여줬다. 이 같은 차이는 어디에서 발생하는 것일까. 김소림 한국자동차공업협회 상무는 “최근 들어 자동차의 기계적인 성능이 비슷해지면서 소비자들을 감각적으로 끌어당길 수 있는 ‘감성품질’이 구매를 결정짓는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감성품질을 높여라=최근 감성품질을 높이기 위한 세계적인 자동차 메이커들의 경쟁이 치열하다. 아우디에는 일명 ‘후각팀’이라고 불리는 우리에게는 생소한 조직이 있다. 루에스만 가이거 아우디 후각팀장은 “사람의 코와 같은 성능을 가진 측정장치로 500여개에 달하는 인테리어 부품을 검사해 불쾌한 냄새가 나는 부품을 가려낸다”고 설명했다. BMW는 엔진과 섀시, 계기반, 시트 등 개발팀마다 ‘사운드 클리닝’ 전문가를 두고 미세한 소음까지 잡아낸다. 이처럼 선진 자동차 업체들이 감성품질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것은 소비자들이 기계적인 성능보다는 외부 디자인과 내수 시트의 재질, 소리, 향기 등 감성적인 요소에 더 큰 매력을 느끼기 때문이다. 브랜드 가치도 감성품질의 핵심요소 가운데 하나다. 자동차업계에서는 현대차가 글로벌 톱 플레이어로 치고 나가기 위해서는 시장을 이끌 수 있는 마케팅 전략과 브랜드 이미지 관리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한 수입차업체 대표는 “현대차의 품질과 성능은 경쟁사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발전했지만 소비자의 선택을 이끌어내는 데는 아직도 부족하다”며 “브랜드를 재정의하는 작업은 천문학적인 비용을 투자한다고 해도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는 게 현실이므로 중ㆍ장기적인 전략을 세워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프리미엄 제품으로 승부한다=“지난날의 과거는 잊어라. 현대차가 GM도 무너뜨릴 수 있고 도요타도 꺾을 수 있다.” 미국 4대 일간지인 워싱턴포스트는 최근 기사에서 현대차 베라크루즈를 극찬하면서 이같이 평가했다. 지난 4월 뉴욕모터쇼에서 공개된 럭셔리 세단 제네시스(프로젝트명 BH)에도 해외 언론의 찬사가 이어졌다. 모터트렌드는 “GM과 도요타ㆍBMWㆍ벤츠까지도 제네시스를 주목해야 할 것”이라며 “현대차가 이제는 BMW와 렉서스를 직접 겨냥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현대차는 현재 제네시스와 에쿠스 후속모델 VI 등 2종의 럭셔리 세단을 준비하고 있다. 올 연말 선보일 예정인 제네시스는 엔진과 플랫폼ㆍ서스펜션 등 차량의 기본요소가 기존과 완전히 다른 새로운 개념의 최고급 세단으로 현대차 최초의 후륜구동(FR)을 적용했다. 또 오는 2009년 출시 예정인 VI는 5리터급 타우엔진을 장착, 해외시장에서 BMW 7시리즈나 렉서스 LS 모델과 경쟁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대차의 이 같은 럭셔리 차량은 브랜드 가치를 높이겠다는 의도에서 비롯됐다. 그동안 추진해온 양적 판매확대와 품질확보 전략이 성과를 거두기는 했지만 환율 등에 밀려 한계를 드러내자 브랜드 전략의 필요성을 절감한 것이다. 현대차의 한 관계자는 “기존의 품질성과들이 중소형차급의 모델에 국한됐으므로 한단계 높은 브랜드 도약에 한계를 느꼈다”면서 “고급차 시장에서 브랜드 가치를 높이기 위해 럭셔리 세단을 준비했다”고 말했다. ◇고객을 움직여 시장을 선도해야=현대차는 지금까지 양적인 생산확대와 계량화된 품질개선에 집중하다 보니 고객을 움직여 시장을 이끄는 역량과 위상을 갖추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미래형 자동차도 마찬가지다. 현대자동차가 11일 프랑크푸르트모터쇼에서 수소 연료전지를 이용한 콘셉트카 아이블루(i-Blue)를 공개해 해외 언론의 관심을 모았지만 프리미엄 브랜드 차량의 선진기술과 견주어볼 때 아직 2~3년 정도 벌어진 기술격차를 좁히지 못했다. 친환경에 맞춘 디젤 차량의 성능향상 속도는 메르세데스-벤츠 등 유럽 메이커에 한참 뒤지는데다 가솔린ㆍ디젤ㆍLPG 등 화석연료에 전기모터를 접목시킨 하이브리드카 시장에서도 선두주자인 도요타를 멀리서 뒤따르는 상황이다. 김기찬 가톨릭대 경영대학장은 “현대차는 단기적으로 각 지역별로 경쟁브랜드가 어디인지 파악해 특화된 판매 및 마케팅 전략을 펼쳐야 하며 중장기적으로는 고연비ㆍ친환경 차량을 집중 개발해 시장을 선점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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