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한보 대출 끊임없는 외압의혹/대출거부 행장 이유없이 중도퇴진

◎야,청와대 측근·민주계 핵심 지목/관치금융 극복않는한 「제2한보」 배제못해한보그룹의 부도사태가 터지자 야당들은 청와대측근과 민주계일부를 겨냥해 한보대출의 압력주체라며 정치 쟁점화시키고 있다. 시중은행장을 지낸 모 인사는 『은행장의 간 크기가 얼마인줄 아느냐』며 『과연 은행장들이 수백억원 단위의 대출을 임의로 할 수 있다고 보느냐』고 반문하고 있다. 이번 한보 부도사태가 은행들의 판단잘못이 아니라 외부압력에 의해 이뤄진 일임을 지적하는 대목이다. 또 다른 은행 임원은 『한국 금융현실에서는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경제논리보다 힘의 논리가 판을 치는 한국 경제현실에서 언제든지 나타날 수 있는 「특혜도미노」로 인한 필연적인 결과라는 얘기다. 특히 금융이 외관상 관치의 틀을 벗어난 것처럼 보이지만 권력으로부터 전혀 자유롭지 못한 상태이기 때문에 한보그룹과 유사한 사례가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따라서 실질적인 금융자율화, 은행의 책임경영이 이뤄지지 않고서는 한보그룹과 같은 어처구니없는 사례가 앞으로도 계속될 수 밖에 없다고 금융인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한보그룹이 은행에서 끌어다 쓴 돈만 해도 자본금의 40배에 가까운 3조5천억원에 이르고 있다. 이중 7천8백27억원은 담보도 챙기지 못한채 빌려줬다. 더구나 은행법상 동일인 여신한도(대출 자기자본의 15%, 지급보증 30%이내)에 묶이자 신탁계정 자금을 동원해 한보그룹에 돈을 대줬다. 은행들이 이같은 상식밖의 자금지원을 스스로 경제논리에 입각해 결정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하늘로 손바닥을 가리는 것이나 다름없다. 과연 은행들은 무슨 이유로 담보를 초과한 대출을 그렇듯 쉽게 해줄수 있었을까. 세가지 방향에서 생각해볼 수밖에 없다. 먼저 은행자체의 판단잘못이다. 그러나 은행의 생리와 관행을 조금만 안다면 이는 웃기는 이야기 일수 밖에 없다. 담보없이 단 1억원도 대출이 어려운 현실이나 대출 단위별로 까다로운 심사와 전결과정이 얼마나 얽혀있는지는 은행 대리급만 돼도 알수 있는 일이다. 만일 은행의 판단 미스라면 당연히 관련 임직원은 응분의 책임을 면할 수 없다. 그러나 최소한 대출에 대해 이같은 책임을 느끼는 은행은 없는 것 같다. 다음으로는 외부 압력 개입이다. 한일은행장이었던 윤순정씨는 한보 정태수 총회장의 대출요구와 압력을 거부했다는 이야기는 금융계의 공공연한 비밀이다. 시중은행가운데 한일은행이 이번 부도에 연루되지 않았지만 결국 윤씨는 뚜렷한 이유없이 은행장직을 물러나야만 했다. 5, 6공시절 일이 아니라 김영삼대통령 집권후의 얘기다. 최근 은행가는 임기만료되는 은행장들의 거취때문에 어수선한 분위기이다. 은행장의 3연임여부에 대해 금융당국은 어정쩡한 태도를 보이고 있고 이 때문에 이른바 실세와의 연결정도에 따라 3연임도 선별처리될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한 실정이다. 이처럼 은행장의 거취가 경영능력이나 실적보다는 「줄」에 의해 좌우되는 현실이기 때문에 한보사태와 같은 후진적인 사건이 곳곳에 잠복해 있는 현실이다. 마지막으로는 은행측의 독직이 개재돼 있다는 가설이다. 이런 비리가 개입돼 있지 않다면 은행이 한보와 같은 방만한 경영을 계속해온 기업에 거액의 대출을 계속할리 만무하다는 지적이다. 한보철강이 산업은행과 제일은행에서 거액의 대출을 받은 시점은 문민정부 출범후인 95년과 96년 2년동안이다. 이 기간중 한보는 무려 2조원의 은행대출을 받았다. 당시 한햇동안 부도로 1만3천개이상의 기업이 쓰러져 중소기업 지원이 최대 현안이던 상황인데 사업전망도 불투명한 한보철강은 천문학적 규모의 은행돈을 손쉽게 꺼내쓰는 요술을 부린 것이다. 당시 재경원장관은 홍재형, 나웅배씨. 그러나 이들이 한보대출에 관여했다는 이야기는 없다. 재경원의 고위간부는 『은행대출건에 관한한 재경원은 이미 관심밖인지 오래다』며 재경원의 윗선에서 이뤄졌음을 시사했다. 그런가하면 정치권 일각과 증시에서는 한보의 끝임없는 대출이 가능했던 이유로 92년 대선자금제공설이 흘러 나오기도 했다. 힘의 논리로 좌우되는 특혜도미노의 고리를 끊지 않고서는 제2, 제3의 한보사태가 계속 이어질 수 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특혜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힘의 소유자에 대해 견제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와 감시체제를 마련, 관치금융의 그늘을 벗어날 실질적인 금융자율화를 이루는게 시급한 실정이다.<이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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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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