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시론/8월 10일] 총리직은 대선후보 검증자리?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정운찬 총리가 지난해 9월 총리에 지명됐을 때, 모두가 또 한명의 대선 후보의 탄생이라고 했다. 그러다가 정 총리가 세종시 문제로 타격받고 그만두려 하니까, 이제는 신임 총리 지명자인 김태호 전 경남지사를 두고 새로운 대선 후보의 탄생이라고 떠든다.

물론 김 전 지사나 정 총리나 모두 대선 후보가 될 수는 있다. 문제는 이런 식으로 돌아가면, 총리라는 직책이 대선 후보를 테스트하는 자리로 전락될 위험이 있다는데 있다.


대한민국의 총리는 정말 막중한 자리이다. 지금의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지니 계수는 날로 커지고 있고, 부동산 침체는 건설업체의 줄도산을 우려하게 만들 지경이며, 청년 실업은 이제는 당연하게 받아들일 정도로 만연해 있다.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북한은 수시로 우리를 위협하고 있고, 핵문제 해결기미는 좀처럼 보이질 않는다. 리비아 사건에서 볼 수 있듯이 우리의 외교력 역시 그다지 높게 평가할 상황은 아닌 것 같다. 정말 총체적 난국이라고 불릴 수 있는 이런 상황에서 총리의 역할은 막중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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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그런 막중한 자리이기에, 국정의 어려움을 풀어가는 능력을 통해 대선후보로서의 자격을 검증을 받을 수는 있다. 하지만, 총리 지명을 받으면, 숙제가 하나씩 주어진다는 데 문제가 있다. 정 총리에게는 세종시 수정안 통과라는 과제가, 이번 김 총리 지명자에게는 4대강 사업의 성공적 추진이라는 숙제가 주어진 것 같다.

청와대는 부인하지만 세종시 수정안 부결 이후 정 총리가 스스로 물러나는 걸 보면, 크게 틀리지 않는 것 같다. 더욱이 일반 국민들에게 정 총리 하면 세종시 밖에 떠오르는 게 없다. 이번 개각에서도 평소 4대강 사업에 긍정적인 입장을 견지했던 김 전지사의 총리 임명과 국토해양부장관과 환경부 장관의 유임을 두고 4대강이 강조된 개각이라는 세간의 분석 역시 이런 추론을 가능하게 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숙제들은 하나같이 사회적 균열구조를 직ㆍ간접적으로 반영하거나, 균열을 확대시키는 사안들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즉, 다른 여타 사회적 사안들과는 달리 의견이 극렬하게 갈리는 문제들이라는 것이다. 더욱이 이런 정권적 차원의 과제들과 앞서 언급한 시급한 국정현안들과는 그다지 연관성이 많아 보이질 않는다.

이런 상황만 놓고 보면 결국 대통령이 추진하는 사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총리는 대선후보로서 인정을 받고, 그렇지 못하면 상처만 받은 채 조용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고 볼 수밖에 없는데, 대선후보로서 능력 기준이 정권적 차원의 사업 추진력이라면 이는 정말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대권후보로서의 자질은 정권차원의 사업을 밀어붙이는 것이라기보다는 조정자로서의 능력이 더욱 중요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사회적 갈등을 조정하는 능력이 총리의 가장 중요한 자질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는 사회적 합의에 의한 사안의 중요도를 인식하고, 그 시급한 순서에 따라 일을 해결해 나가야 한다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만일 사회적으로 의견이 극심하게 갈라져 있는 사안임에도 밀어붙인다면, 이는 권력자에 대한 충성도 테스트에 불과하다. 물론 현재의 권력자 입장에서 차기 대선후보들을 관리하려는 것은 이해가 간다. 왜냐하면 이를 통해 레임덕의 조기 가시화를 어느 정도 방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것이 도를 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어느 정권이든 레임덕을 막기 위해 집권 후반기로 갈수록 친정체제를 강화한다. 이번 개각도 친정체제가 확립됐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친이계 인사들이 대거 포진해 있다. 그런데, 이 정도에서 끝나야지, 총리마저, 대선후보 검증이라는 명분으로 정권적 차원의 사업 추진을 위해 총대를 메게 한다면, 이는 지나치다고 밖에 할 수 없다. 국가를 운영하는 입장에서, 총리는 총리의 역할을 자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총리를 시켰다가 숙제를 잘못하면 바꾸는, 이른바 ‘아니면 말고’ 식의 총리 임명과 대선후보 검증은 엄청난 국력 낭비를 초래할 수 았다. 권력은 유한하지만, 대한민국은 영원하다는 점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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