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와 농협이 잇따라 택배사업에 눈독을 들이면서 국내 택배 시장에 전운이 감돌고 있다. 택배업계는 시장 포화로 가뜩이나 수익성이 악화된 상황에서 대기업이 택배 시장에 진출할 경우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다고 우려한다.
16일 업계에 따르면 롯데쇼핑(023530)은 최근 현대로지스틱스의 최대주주인 일본 금융기업 오릭스의 특수목적법인(SPC)과 투자(1,250억원) 계약을 체결했다. 이번 계약으로 현대택배를 운영하는 현대로지스틱스의 지분 구조는 오릭스(35%), 롯데쇼핑(35%), 현대상선(011200)(30%)로 바뀌고 롯데쇼핑이 현대택배의 주요 주주가 됐다.
롯데쇼핑은 오릭스가 현대로지스틱스의 지분을 매각하면 우선적으로 매입할 수 있는 우선매수청구권까지 챙겼다. 사실상 현대택배를 인수해 택배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하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롯데는 오릭스가 먼저 지분 투자를 요청했다며 공식적인 택배사업 진출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그간 아주택배·로젠택배 등 중소 택배업체가 매물로 나올 때마다 롯데가 공공연히 인수전에 뛰어들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머지 않아 현대택배를 인수한 뒤 시장에 뛰어들 것이라는 게 지배적인 관측이다.
택배업계는 롯데의 택배사업 진출이 파급력이 클 것으로 본다. 백화점(롯데백화점), 대형마트(롯데마트), 기업형슈퍼마켓(롯데슈퍼), 홈쇼핑(롯데홈쇼핑), 편의점(세븐일레븐)을 거느린 롯데의 영향력을 감안하면 단번에 주도권을 꿰찰 수 있기 때문이다. 앞서 택배 시장에 뛰어들었다가 철수한 신세계나 동원과는 규모나 경쟁력에서 차원이 다를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농협택배도 변수로 떠올랐다. 이동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최근 농축산물 거래비용 절감을 위해 택배사업이 필요하다고 밝히면서 농협의 택배 시장 진출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지난 8월 우체국택배가 토요일 영업을 중단한 뒤 나온 것이어서 정부가 준공공기관인 농협의 택배사업 진출을 묵인한 것 아니냐는 시각이다.
농협은 택배사업에 나서더라도 일단 자사 거래에만 한정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업계의 시선은 곱지 않다. 자산 290조원에 계열사 44개를 거느린 거대 공룡인 농협이 택배 시장 전체를 뒤흔들 만큼 영향력이 크기 때문이다. 현행 택배업계가 운영하는 택배 차량이 일정 대수 이내로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 반면 농협은 농협협동조합법에 따라 차량 증차에 제한이 없다는 점도 논란거리다.
국내 택배 시장은 매년 평균 7% 성장률을 기록하며 지난해 4조원대로 커졌다. CJ대한통운(000120)택배가 37%의 점유율로 1위를 달리는 가운데 현대택배(13%), 한진(002320)택배(11%), 우체국택배(9%), 로젠택배(7%)가 뒤를 잇고 있다. 하지만 택배기사 처우와 택배업체의 수익성을 가늠하는 택배단가는 시장 포화에 따른 출혈 경쟁으로 10년째 2,000원선에 머물고 있다.
한국통합물류협회 관계자는 "롯데와 농협의 택배사업 진출은 대기업의 일감 몰아주기를 넘어 택배 시장의 구도를 재편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