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이창원 한메소프트 사장(창업스토리)

◎사업실패 디딤돌 경영귀재로/창업 SW사 별 성과없어 뒤늦은 합류/회사 위기때 대표이사 취임 능력발휘/작년 매출 50억 종합정보통신사 도약컴퓨터를 사용하는 사람들치고 「한메타자교사」라는 소프트웨어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대부분의 컴맹들이 컴퓨터자판에 익숙해지기위해 처음 대하는 프로그램이기 때문이다. 자판 연습 프로그램인 「한메타자교사」는 정식판이든 불법복사판이든 국내 대부분의 PC에 깔려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정작 이 유명소프트웨어를 만든 한메소프트라는 회사를 아는 사람은 예상외로 드물다. 한메소프트는 지난 89년 8월 학생신분의 컴퓨터매니아 8명이 모여 설립한 회사. 한글과 컴퓨터사보다 일찍 설립됐다. 종합 정보통신기업을 꿈꾸고 있는 소프트웨어 전문업체인 한메소프트는 지난해 5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올해로 서른두번째 생일을 맞게 된 이창원사장은 한메소프트를 이끌고 있는 젊은 수장이다. 이사장은 자본금 한 푼없이 젊은 패기만으로 설립된 한메소프트에 뒤늦게 참여한 케이스. 그는 여느 컴퓨터매니아사장들과 비슷한 창업절차를 거쳤다. 연세대 경영학과 84학번인 이사장은 학생시절 학과공부보다는 컴퓨터에 더 큰 매력을 느꼈다. 졸업후 시작한 사업도 컴퓨터관련분야였다. 이사장은 지난 91년 교내 컴퓨터동아리인「YCC」선후배들과 단돈 5백만원으로 용산에 사무실을 차리는 것으로 사회에 첫 발을 내디뎠다. 회사이름은 FATO. From Alpa To Omega의 준말로 처음부터 끝까지라는 의미다. 『소프트웨어개발에서 공장자동화를 비롯한 하드웨어분야까지 닥치는 대로 일을 맡아 했습니다. 그러나 별 성과가 없었어요』 이 사장은 FATO를 차린후 1년동안 그저 먹고살 수 있는 정도의 돈은 벌었다고 회고했다. 그러나 그는 1년후 평소 친분이 두터운 한메소프트 창업멤머중의 한 명인 김택진씨의 제의로 한메소프트에 합류했다. 한메연구소장으로 일을 하던 그가 대표이사를 맡은 것은 지난94년. 회사가 한창 어려울 때였다. 이사장 말대로라면 직원들이 월급도 못가져갈 정도였다. 대기업들이 워드프로세서시장에 너도나도 참여해 시장이 초토화될 지경에 이르자 중소기업들이 끼어들 틈이 없었던 것이다. 이사장은 회사를 살리기 위해 개발보다는 경영에 치중했다. 그는 경영수완을 유감없이 발휘하기 시작했다. 그는 회사를 맡자마자 회사운영방식을 패키지소프트웨어개발위주에서 용역수주로 과감하게 전환했다. 『엔지니어들에겐 뼈아픈 일이었지만 회사를 살리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습니다』 선투자의 위험이 따르는 개발보다는 위험을 최소화할 수 있는 용역수주를 회사회생의 길로 택한 것이었다. 이사장의 생각은 그대로 적중했다. 매출도 늘고 순익도 증가했다. 이사장은 회사를 정상궤도로 올려놓은 뒤 지난해 굵직한 일 두 가지를 벌여놨다. 국내 소프트웨어 시장은 이미 한계에 부딪쳤다고 생각한 이사장은 회사규모를 키워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래서 결정한 것이 대농그룹의 엔젤펀드(우호적 자본)을 끌어들인 일이다. 지난해 4월 대농그룹을 대주주로 끌어들인 한메소프트는 기존의 윈도우 중심의 어플리케이션 개발회사에서 오피스, 출판, 교육, 오락, 가상사회등 5개분야의 핵심사업군을 중심으로한 종합 소프트웨어기업으로 변신할 수 있었다. 이어 9월에는 태시스템 서체, 아이에스엠 코퍼레이션, 한메네트워크, 이스트소프트, F1컨설팅등 5개 컴퓨터관련업체들과의 통합을 이끌어 내 종합정보통신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국내 소프트웨어의 세계화에 앞장서고 싶다며 여전히 개발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이사장에겐 확고한 경영방침이 있다. 『매출극대화가 기업의 목표이지만 그 바탕은 기본적인 기술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박동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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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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