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 정전사태는 산업단지의 전력공급에 관한 구조적인 문제점을 노출했다. 이는 우리나라 유화산업 심장부의 기능이 정전 때문에 한 번도 아니고 사흘 간격으로 두 차례나 정지된 데서도 알 수 있다. 문제는 위기에 노출될 수밖에 없는 ‘관리 마인드’다. 단순히 한국전력의 책임이냐, 업주업체의 책임이냐를 따지기에 앞서 유화 심장부를 보호해야 할 양측이 서로 간 책임 논쟁만 벌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한전의 한 현장기술자는 “지난 3일 1차 정전 때 한화석화 내부의 피뢰기를 보러 갔더니 한화 측이 처음에는 들어오지도 못하게 했다. 나중에 자체 수리를 했다고 해서 들어가보니 피뢰기 관련 설비를 제대로 고쳐놓지도 않고 가압해달라고 하더라”고 주장했다. 반면 여수산단의 한 입주업체 관계자는 “공장 안의 전력설비 관리는 우리가 하는 것은 맞지만 한전의 허락 없이는 피뢰기가 있는 철망 안으로 들어가지도 못한다”고 항변했다. 국가산업단지의 전력공급체계가 중층적 보안관계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한전은 한전대로, 기업은 기업대로 이중의 안전장치가 없으면 이번과 같은 정전사태는 언제든지 재발할 수 있다. 이는 하드웨어(시설)뿐만 아니라 소프트웨어(관리 마인드)까지 함께 변해야 가능하다. 일각에서는 “한전이 기업의 전력설비 전체를 인수해 관리 책임을 다시 지는 시스템을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기업의 과감한 설비투자를 주문하는 목소리도 높다. 김진우 에너지경제연구원 전력실장은 “한전의 전력 공급에만 의지하다 보면 순간의 발전기 상태나 수요변화, 라인의 상태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며 “업체 스스로 전력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석유화학공단의 경우 한번 정전이 되면 1,000억원 이상의 천문학적인 피해를 입을 수 있기 때문에 기업 스스로도 나름의 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강기성 전력경제연구회장은 “정밀화학공정의 경우 순간적인 정전에도 공정이 다 못쓰게 된다”며 “사고 후 공정 내부의 중간재료를 다 긁어내는 비용을 감안하면 업체들이 전기설비를 유지ㆍ보수하는 비용을 아낄 이유가 없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기업들이 노후화 장비 교체 등 전력설비 관리에 적극 나서는 한편 자가발전 시스템 등 최소한의 비상 대응능력을 갖춰야 한다고 주문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전력을 공급하는 한전과 생산라인 유지를 우선으로 하는 기업 간에 긴밀한 네트워크를 구축해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