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산업일반

[50돌 맞는 전경련 존재 이유 있나] <4·끝> 경제단체 통폐합 시급

"태생적 한계로 기능 상실… 재계 새 구심점 찾아야" <br>대·중기 아우르는 商議에 "재계 창구 맡겨야" 힘실려 <br>전경련 명맥 잇고 싶다면 친목단체나 싱크탱크 전환… 사무국 개혁·감독도 필요


최근 불거진 전국경제인연합회의 정치권 로비 사건을 계기로 경제단체 통폐합을 가속화하라는 국민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는 시대착오적 파행을 일삼는 전경련을 없애고 전경련의 기능을 대한상공회의소와 한국경영자총협회 등으로 이관하라는 엄중한 요구다. 이 같은 지적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경제단체들의 기능이 중복되면서 불필요하게 인력과 예산을 낭비하고 있다는 쓴소리가 이어져온 게 그것. 이 때문에 차제에 불법 로비 시도로 충격을 준 전경련을 해체하고 대한상의에 재계의 구심점 역할을 맡겨야 한다는 주장에 더욱 힘이 실리고 있다. 사실 법정단체이자 국내 경제단체 가운데 가장 오래된 대한상의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을 함께 아우르는 국내 최대의 기업인단체다. 가장 많은 회원사(13만5,246개)를 두고 있는 만큼 30대그룹 중심의 전경련에 비해 대표성도 월등히 앞선다. 실제 대한상의 회원사는 대기업 2,320개사, 중소기업 13만2,926개사나 되는 반면 전경련은 대기업 500여개사에 불과하다. 이런 이유로 과거 박용성 전 대한상의 회장은 "앞으로 경제단체를 나열할 때 대한상의를 맨 앞에 둬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전경련이 '정경유착'의 대가로 재계의 맏형 자리를 꿰찬 것을 꼬집으며 대한상의가 재계 수석기관이 돼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대한상의가 국제상업회의소(ICC)를 중심으로 130여개 국가 상공회의소와의 네트워크를 통해 한국을 대표하고 있다는 점도 전경련을 대체할 수 있는 필요충분조건 가운데 하나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소수의 대기업 회원사 이익을 대변하는 전경련이 존재할 필요가 없다"며 "세계 어느 나라에나 있는 상공회의소가 재계 이익단체이자 자율 규제기구로서 역할을 재정립해 재계를 대변하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대한상의와 전경련의 업무가 상당 부분 중첩돼 회원사(기업)들이 비용을 이중으로 치르고 있다는 점은 통합을 서둘러야 할 근본적 요인이 되고 있다. 양 기관은 ▦기업윤리 ▦국제협력 ▦환경 ▦물류 ▦관광 ▦중소기업 ▦조세 등의 분야에서 위원회를 구성하거나 별도의 사무국 내 팀, 유관 연구기관 등을 통해 업무를 하고 있다. 김재철 전 무역협회장이 회장 시절 "경제단체가 너무 많아 재계의 의견수렴이 일원화되지 않고 있다"며 "경제단체는 통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한 것도 바로 이 같은 이유에서다. 두 단체를 통합할 필요성은 일본과 중국의 사례를 보면 더욱 절실해진다. 일본은 지난 2002년 업무가 중복된 게이단렌(經團連)과 닛케이렌(日經連)을 게이단렌으로 통합해 실직적인 효과를 거두고 있다. 중국에서는 대한상의ㆍ경총ㆍ무역협회ㆍKOTRA 등의 기능이 결합된 중국국제무역촉진위원회(CCPIT)가 경제업무를 총괄, 재계 업무를 효율적으로 수행하고 있다. '태생적 한계'를 가진 전경련을 차제에 없애야 한다는 국민들의 바람이 더욱 커지고 있다는 점도 통합을 서둘러야 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다. 박정희 정권 시절 초고속 성장을 위해 정략적 차원에서 설립된 전경련은 한정된 재원을 소수 대기업에 집중 분배해 국가경제를 확대하려는 정부에 맞춰 정책논리를 개발하고 개발독재체제를 옹호하기 위한 재벌의 구심점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런 역할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국민은 거의 없다. 특히 대우그룹이 80조원이라는 막대한 부담을 국민에게 남기고 공중 분해되고 재벌 총수들의 불법 정치자금 제공이 만천하에 공개되면서 전경련은 더더욱 존립근거를 상실했다. 이의영 군산대 경제학과 교수는 "전경련은 그동안 과도하게 재벌 편향적인 정책이 집행되도록 하는 역할을 했다"면서 "정부가 경제정책에서 5개 경제단체 중 전경련을 과도하게 비중 있게 대하는 것은 문제가 있으며 대한상의ㆍ경총ㆍ무협 등 다른 단체를 균형 있게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경제ㆍ사회구조가 복잡해지고 기업들이 글로벌화되면서 같은 현안에 대해서도 이해관계가 엇갈리고 입장이 달라졌다는 점도 전경련이 간판을 내려야 하는 이유로 꼽힌다. 4대그룹의 한 고위관계자는 "더 이상 재계의 공통된 입장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며 "이런 상황에서 현재의 전경련이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50년 된 조직을 과거와 똑같이 유지하겠다는 것은 시대착오적 발상"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한편에서는 전경련이 명맥을 잇고 싶다면 재계 친목도모 단체인 라운드테이블 정도로 대폭 축소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견해를 내놓고 있다. 또 로비 논란을 빚는 정책기능이나 대관업무는 완전히 없애버리고 재계의 사회공헌 창구 정도로 남는 것 정도는 용인해줄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과연 제 역할을 할 수 있을지 미지수이기는 하지만 전경련과 한국경제연구원ㆍ자유기업원 등을 합쳐 헤리티지재단처럼 한국의 싱크탱크로 만들 수 있지 않느냐는 제안도 오래 전부터 거론돼왔다. 전경련에 몸담았던 한 고위인사는 "과거에도 전경련 내부적으로 싱크탱크로의 전환이나 재계 라운드테이블 주선 역할 정도로 규모를 축소해야 하는 방안을 검토한 바 있다"면서 "이제는 그러한 방안이 실천으로 옮겨질 때"라고 전했다. 이와 함께 전경련이 어떤 형태로 존립하든 간에 작금의 전경련 병폐의 주범으로 꼽히는 '양철(정병철 상근 부회장, 이승철 전무)'을 교체하는 것이 최우선돼야 한다는 데 재계의 견해가 모아져 있다. 또 특정 세력이 독단적으로 의사결정을 하는 파행을 막기 위해 4대그룹 등에서 임직원을 파견하는 형태로 이를 견제, 감시할 필요성도 제기되고 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전경련의 가장 시급한 과제는 기피대상으로 찍힌 특정 인물들을 교체하는 것"이라면서 "그 후에 새로운 인물이 주축이 돼 전경련의 정체성을 모색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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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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