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산업일반

수출중기 또 '환율 공포'

엔·유로화 대비 원화강세에 일본 등 진출 포기사태 속출

키코 트라우마에 환 관리도 소극적


자동차용 고무·플라스틱 부품을 생산하는 에나인더스트리는 일본 대재해가 끝난 지난 2012년 일본 주요 자동차 업체들로부터 납품 제안을 받았다. 실사까지 순탄하게 진행되면서 막바지에 달했던 협상은 견적가 산출 단계에서 난관에 부딪혔다. 나날이 가속화되는 엔저로 양측 입장이 조율되지 못했던 것. 이 업체는 결국 최근 일본 시장 진출을 전면 포기하고 현지지사까지 철수했다. 신승동 전무는 "자동차 업체 간 계약은 몇 년에 걸쳐 진행되는데 계약 초기인 2012년부터 3년간 엔화 가치가 30% 이상 떨어졌다"며 "환율부담 때문에 당시 나고야 지역 진출을 시도했던 10여개 한국 기업들이 '엔저' 타격을 견디지 못하고 모두 철수한 상태"라고 말했다.

최근 글로벌 환율전쟁이 거세지는 가운데 원화가 상대적인 강세를 보이면서 우리나라 수출 중소기업들이 직격탄을 맞고 있다. 특히 일본과 유럽이 양적완화 정책을 펴면서 글로벌 시장에서 국내 수출 중소기업들의 경쟁력은 하루가 다르게 떨어지며 수출전선에 적신호가 켜졌다.


25일 한국은행과 중소업계에 따르면 이날 현재 원·유로 환율은 1,202원으로 2009년 3월(1,904.04원)에 비해 6년 새 37%나 하락했다. 사정은 원·엔 환율도 마찬가지. 지난해 3월 1,013원선에 달했던 100엔당 원화 환율은 921원선까지 미끄러졌다. 최근 1년여 동안을 놓고 보면 이 같은 흐름은 더욱 두드러진다. 지난해 1월 이후 24일 현재 달러화 대비 주요국 통화 환율 변화를 보면 우리 경쟁국인 일본 엔화 환율은 13.51%나 올랐고 유로화는 무려 20.39%나 상승했다. 이에 비해 원화는 5.17% 상승하는 데 그쳤다. 엔이나 유로화에 비해 원화가 상대적으로 강세를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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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국제환율시장에서 원화가 상대적인 강세를 보이자 마땅한 환리스크 대응 시스템을 갖추지 못한 국내 수출 중소기업들이 타격을 받고 있다. 중소기업들은 수출국 다변화와 달러 장기 차입금 축소 등 자구책 마련에 나섰지만 원화 강세에 따른 경쟁력 하락으로 일부 지역에서는 현지진출 포기 사태까지 속출하고 있다.

일본 시장 진출에 진통을 겪고 있는 중소업체들은 동남아 등으로 수출선을 다변화하려고 안간힘을 쓰지만 이곳에서도 일본 제품과 경쟁할 수밖에 없어 어려운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엔진용 부품을 생산하는 인지컨트롤스의 한 관계자는 "수년간 도요타 계열사 회사의 오사카 공장에 납품해왔지만 달러 결제를 보장받지 않는 이상 추가 현지 진출은 불가능하다"며 "주위에서도 일본 업체와의 신규 계약 추진을 대부분 포기했지만 우리는 마지막 수단으로 동남아에 사활을 걸고 있다"고 전했다. LED 전문업체인 솔라루체 역시 엔저 장기화로 채산성이 악화되자 일본 비중을 줄이고 동남아로 거래처를 다변화하고 있다.

이처럼 중소기업들이 원화 강세로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2008년의 키코(KIKO) 트라우마가 아직 남아 있는 터라 환리스크 대응에는 적극적이지 않은 모습이다. 류성걸 새누리당 의원이 지난해 국감 때 내놓은 '중소 수출업체의 환관리 자료'에 따르면 중소 수출기업 6만3,999곳 가운데 환변동보험에 가입한 곳은 0.56%(361곳)에 불과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에 따라 중소업계에서는 정부의 적극적인 통화정책과 함께 기업들이 환관리에 적극 나설 수 있는 환경 구축을 서둘러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김태환 중소기업중앙회 통상정책실장은 "수출 중소기업 가운데 환차손 부담을 떠안을 수 있는 업종은 몇 개 없을 정도로 모든 업종이 환위험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며 "기업 규모에 따라 차등을 둬 수수료 등 지원 혜택을 중소기업에 집중하는 정책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홍성철 중소기업연구원 전문위원은 "중소기업들은 환관리와 관련된 정보 자체가 절대적으로 부족할 수밖에 없다"며 "외환전문기관이 시행하고 있는 환관리 컨설팅에 적극 참여하도록 일종의 쿠폰제를 도입하는 등 중소기업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인식 개선에 나서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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