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동십자각] 개정 한은법에 거는 기대


세계 금융의 중심지인 뉴욕 월가에는 국민∙신한∙우리∙하나 등 국내 시중은행들이 법인이나 지점형태로 진출해 있다. 뉴욕 특파원시절 이들 은행의 법인장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가장 많이 접한 단어가 바로 '까다로운 감독'이었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물론 금융 관련 기관들이 수시로 검사관을 파견하고 조사를 벌이기 때문에 항상 긴장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법인장들의 가장 큰 고충이었다. 당시 만났던 한 법인장은 "한국의 금융감독시스템과 비교하면 미국은 그야말로 현미경을 들이대며 은행들을 검사할 정도로 꼼꼼하다"면서 "감독 준비 업무량은 한국과 비교해 3배가량 많은 것 같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지난달 31일 한국은행법 개정안이 우여곡절 끝에 국회를 통과했다. 쟁점이 되고 있는 지급준비금 적립 대상 채무를 어디까지로 할 것인지, 한은이 자료제출권을 요구할 수 있는 금융회사의 범위를 어디로 할 것인지는 시행령에 위임했다. 시행령 개정을 앞두고 한은과 금융감독위원회∙금융감독원∙금융회사 간 신경전이 치열하다. 개정된 한은법이 시행되는 오는 12월까지는 시행령도 개정해야 하기 때문에 이르면 다음달 말 개정안을 입법예고하고 관련 절차를 밟을 것으로 보인다. 시중은행들은 한은 공동조사권한을 가능한 한 줄여야 한다고 목청을 높이고 있지만 이는 설득력이 약하다. 금융자본의 속성은 기회가 주어지면 탐욕으로 빠져들게 마련이다. 금융위와 금감원의 감독시스템만으로는 은행들의 '비이성적 행동'을 제약하는 데 한계가 있다. 3년 전 발생했던 리먼브러더스 사태처럼 외환위기가 발생할 때마다 국내 은행들의 외환건전성이 도마 위에 오르는 것은 현행 감독시스템에 구멍이 뚫려 있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다. 한은은 금융 당국과 함께 이중 감시체계를 더욱 공고히 해야 한다. 저축은행에 대한 한은의 자료제출요구 권한도 차제에 대폭 강화돼야 한다. 금융 당국은 저축은행 대주주들의 도덕적 해이와 부실대출∙경영부실 등을 통제하는 데 한계를 드러냈고 심지어 부실 가능성이 큰 저축은행의 후순위채권 발행을 승인하기까지 했다. 저축은행 부실과 영업정지 조치로 선량한 예금자들의 원성은 하늘을 찌르고 있다. 해답은 명확하다. 금융 당국은 한은법 개정이 당국의 권한과 권위를 떨어뜨릴 것이라는 피해의식에서 벗어나 한은과 함께 금융감독을 한층 엄격하게 추진해야 한다. 감독업무 준비에 일손이 많이 들어간다는 시중은행들의 구차한 변명에 현혹되지 말고 금융 당국과 한은은 금융시장을 지키는 최후의 파수꾼으로서의 임무에 충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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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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