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부산 ITU(국제전기통신연합) 전권회의'에서는 한국인 첫 고위 선출직 탄생 여부가 국가적 이슈로 자리한다. 한국은 ITU 가입 후 6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정보통신기술(ICT) 산업의 비약적인 발전에 힘입어 활동폭을 크게 넓혔지만, 고위 집행부에는 진출한 적이 없었다. 이런 이유로 정부는 글로벌 ICT 정책·외교 강국으로의 도약과 창조경제에 기여 등을 이유로 정보통신표준화(ITU-T) 총국장에 도전하는 이재섭(사진) 카이스트(KAIST) 융합연구소 박사의 당선에 사활을 걸고 있다.
ITU 전권회의에서는 고위 선출직(5석)ㆍ이사국(48석)ㆍ전파규칙위원(RRB·12석) 등 총 65석을 회원국의 직접 투표로 뽑는다. 이 가운데 우리나라가 이번에 출마하는 분야는 고위선출직 중 ITU-T 총국장과 이사국이다.
우리나라는 지난 1993년 세계전기통신표준화총회(WTSC)에서 ITU-T 연구반 부의장을 최초로 배출한 이래 연구반 의장단을 여러 명 진출시켰다. 2003년 세계전파통신회의(WRC), 2008년 세계정보통신표준화총회(WTSA) 등 2000년대 들어서는 의장단 선출 규모를 더욱 크게 키우며 세계 표준화를 선도하는 국가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2012년 12월 현재 우리나라 ITU 연구반 의장단은 총 14명으로 미국(16명), 일본(15명)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많다.
하지만 정작 핵심직이라 할 수 있는 사무총장, 사무차장, ITU-T 총국장, 전파통신(ITU-R) 총국장, 정보통신개발(ITU-D) 총국장 등 5개 고위 선출직은 한 번도 경험한 적이 없었다. 이번 이 박사의 출마에 거는 기대가 높은 이유다. 특히나 ITU-T 총국장은 ITU 내에서도 사무총장과 ITU-R 총국장과 더불어 빅3 직위로 분류될 만큼 중요한 자리다. ITU-T 총국장은 이동통신, 인터넷TV(IPTV) 등 ICT 글로벌 표준에 대해 최종 결정 권한을 쥐고 있어 당선될 경우 국내 기술과 산업이 세계를 주도하는 데 크게 기여 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 박사는 지난 1992년부터 현재까지 26년 동안 연구반 의장 등 ITU-T 분야에서 꾸준히 활동한 이력이 강점으로 꼽힌다. 더욱이 표준개발 분야에 주도적으로 활동해온 덕분에 인지도, 인적 네트워크, 전문성, 대외적 신인도가 좋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난해 10월 미래창조과학부가 '후보추천위원회'를 통해 들어온 복수 후보자 가운데 굳이 이 박사를 최종 후보자로 결정한 것도 이런 점을 높게 평가했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는 현재 이 박사의 당선을 위해 대내외적으로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외교부(재외공관)와 공조해 회원국들의 지지 교섭을 추진하는 한편 ITU 주요회의와 지역별 준비회의에 참석, 각국 정부관계자와 접촉해 선거 운동을 전개하는 중이다. 우리 땅에서 ITU 전권회의가 열리는 만큼 이 기회를 결코 놓쳐서는 안 된다는 비장한 각오로 임하고 있다.
다만 아직 당선을 낙관할 수는 없다. 현재 이 박사는 터키, 튀니지의 후보와 함께 경합 중인데 후보가 더 등록될 수 있는 데다 193개국이 무기명으로 투표하기 때문에 마지막까지 결과를 예단키 어렵다.
투표 방법은 각 회원국이 1표씩 1차 투표를 해 과반수를 득표한 후보를 선출하는 식이다. 다만 과반 득표자가 나오지 않을 경우 6시간 이상의 시차를 두고 2차ㆍ3차 투표에 들어간다. 3차 투표에도 과반수를 얻은 후보가 없는 경우 결과 발표 후 12시간 이상 지난 뒤 3차 투표에서 최다 득표를 한 두 후보를 놓고 4차 투표를 실시한다. 김용수 ITU 전권회의 준비기획단장은 "우리나라의 위상과 후보자 역량 등을 앞세워 좋은 결과를 거두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지난 1989년부터 2010년까지 내리 6선을 하고 벌써 7선째 도전 중인 이사국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당선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ITU 가입 이래 각종 회의에서 적극적인 활동을 펼친 데다 관련 행사를 유치하며 ICT 발전에 기여한 점을 다시금 인정받을 것이란 자신감이 깔려 있다.
이사국은 미주 9개국, 서유럽 8개국, 동유럽 5개국, 아프리카 13개국, 아시아ㆍ태평양 13개국 등 5개 지역에 48개국이 배분되는데 이번 회의에서는 총 59개국이 신청했다. 아시아ㆍ태평양 지역에서는 한국, 중국, 인도네시아, 쿠웨이트, 사우디아라비아, 태국, 아랍에미리트연합국(UAE), 파키스탄, 바레인, 레바논, 필리핀, 일본, 말레이시아, 방글라데시, 호주, 이란, 스리랑카 등 17개국이 도전장을 던졌다. 김 단장은 "우리나라는 국가 간 정보격차 해소를 위해 ITU와 지속적으로 협력하고 있다"며 "아프리카 지역 디지털 지상파 방송 전환 로드맵 지원, 아·태 지역 국가 지상파 방송 및 이동방송 디지털 전환을 위한 로드맵 수립 지원 등 개발도상국을 위한 다양한 협력 사업을 진행 중에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