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윤종열기자 법조이야기] 김대중후보, 법관기피신청 받아내

재판부가 공정한 재판을 하지 않을 것으로 여겨 법원에 내는 법관기피신청이 법원에 의해 받아들여지는 경우는 좀처럼 찾기 어렵다. 그러나 지난 74년 서슬퍼런 유신정권 당시 대통령선거법 위반혐의로 재판을 받던 김대중 신민당 대통령후보가 낸 재판부 기피신청은 우여곡절끝에 받아들여졌다.金후보는 대통령선거법 위반혐의로 기소돼 서울형사지법(현 서울지법) 수석재판부에서 재판을 받고 있었다. 박충순(朴忠淳)서울고법 부장판사가 당시 재판장을, 이건웅·김재진 판사가 배석판사를 각각 맡았다. 수석부장판사는 예나 지금이나 고법부장판사가 맡고 있다. 이 사건의 주심은 좌배석판사인 金판사가 맡았다. 현재 朴씨는 지난 80년 고등부장을 끝으로, 李씨도 최근 서울고법부장을 끝으로 각각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金판사는 아직도 서울고법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재판을 받고 있던 金후보는 朴부장판사가 무심결에 한 『사전선거운동을 했구먼…』이라는 한마디를 듣고 74년7월2일 불공평한 재판을 받을 염려가 된다며 서울형사지법에 법관기피신청을 냈다. 기피신청은 1·2심에서『법관기피사유가 없다』는 이유로 모두 기각돼 대법원에 재항고를 했다. 제13대 국회의원을 지내고 현재 고향 대전에서 변호사로 일하고 있는 朴忠淳씨는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그는 서울 서소문에 있는 형사지법 601호(현재는 시청 별관으로 사용) 자신의 집무실에서 검사·변호사·金피고인과 함께 무려 5일동안 계속 녹음태이프를 들으면서 검증을 했다고 한다. 그는 똑같은 내용의 녹음테이프를 장장 5일동안 들으니 지루한 생각도 들고해서 별뜻없이 지나가는 말로 『사전선거운동을 했구먼』이라고 던진 말한마디가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올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말했다. 이택돈변호사가 자신의 말을 듣고 법관기피신청을 내겠다는 말을 꺼낸 것으로 기억된다고 했다. 金피고인을 위해 박세경·이택돈·유택형·한승헌변호사가 소송 대리를 맡았다. 韓씨는 국민의 정부에 들어와서 감사원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재항고를 담당했던 대법원 제2부는 74년10월16일 원심결정을 취소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 보냈다. 당시 이 사건을 다루었던 대법원 판사는 김윤행(金允行)·이영섭(李英燮)·양병호(梁炳晧)·한환진(韓桓鎭)씨로 알려졌다. 훗날 李대법원판사는 대법원장을 지냈다. 법관기피신청 사유중 핵심쟁점은 朴부장판사가 김대중후보의 연설녹음 테이프를 검증할 때 『집권공약을 연설했으니 사전선거운동을 했구먼』하는 등의 발언을 했는지 여부 및 만일 발언을 했다면 그 취지가 무엇인가를 하는 점이었다. 재판부는 결정문에서『재판장이 「집권공약을 연설했으니 사전선거운동을 한점은 인정된다」고 말했다면 그것은 미리 법률판단을 가한 경우가 될 수도 있고 피고인으로서는 재판부의 유죄를 예단한 취지의 말로 들을 수도 있어 경우에 따라서는 불공평한 재판을 할 염려가 있는 경우에도 해당할 수 있다』고 밝혔다. 환송 판결을 담당한 서울고법 형사1부는 74년12월18일 김대중피고인이 제기한 법관기피신청을 일부 받아 들이면서 朴부장판사에 대해 불공평한 재판을 할 염려가 있다는 이유로 金피고인의 사건을 심리하지 못하게 했다. 그러나 같은 재판부였던 이건웅·김재진판사에 대하여는 법관기피사유가 없다고 결정했다. 따라서 金피고인의 재판은 결국 다른 재판부가 처리하게 됐다. 당시 서울고법 형사1부에는 이경호(李敬鎬)부장판사가 재판장을, 이재화(李在華)·최종영(崔鍾泳)판사가 배석을 맡았다. 李부장판사는 고인이 됐으며, 李판사는 헌법재판소 재판관으로, 崔판사는 대법관을 지내고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윤종열 기자 YJYUN@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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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종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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