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 당국 고집이 만든 '황영기 사건'

"소급적용이 문제였던 거지 황영기 전 회장이 한 일에 문제가 없다는 건 아니에요."

전직 금융감독당국 관계자는 15일 황 전 KB금융지주 회장의 대법원 승소 건에 대해 이렇게 얘기했다. 형식 논리상으로는 맞다. 재판부는 "황 전 회장이 우리은행 행장 재직 당시에는 퇴직 임원을 제재하는 규정이 없었고 퇴임 후인 2008년에 입법이 이뤄졌다"며 "금융위원회가 내린 직무 정지는 나중에 만들어진 규정을 소급 적용한 것"이라고 했다.

과연 그럴까. 속내를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다. 제재 자체가 성립할 수 없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세부 내용은 따져볼 필요도 없는 셈이다. 금융감독원 출신의 한 고위 관계자는 "당국이 직무 정지라는 중징계를 내리면서 소급적용의 문제를 몰랐을 리 없다"며 "세부내용을 법적으로 따져도 당국이 질 것"이라고 했다.


지난 2009년 9월 감독당국이 당시 KB금융지주 회장으로 있던 황 전 회장에게 중징계를 내릴 때도 뒷말이 많았다. KB 내부 갈등에 따른 정치권 개입설과 모피아 보복설 등이 난무했다. 특히 당국은 황 전 회장이 직접 위험자산에 투자하라는 지시를 내렸는지에 대해 끝내 밝히지 못했다. 보도자료에도 '사실상 지시'라고만 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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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급적용이라는 기본 절차를 무시한 결과가 한 개인에게는 참혹했다. 황 전 회장은 도중에 KB금융지주 회장에서 물러났고 금융권을 떠나야 했다. 3년여간의 소송 끝에 제재에 문제가 있었음을 밝혔지만 잃어버린 명예와 시간, 개인적인 고통은 누가 보상해줄 것인가.

지난달 금융위에는 경사 아닌 경사가 있었다. 저축은행 금품 수수 사건으로 구속된 고위 관료가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검찰의 무리한 기소에 잘나가던 '엘리트 관료' 하나만 잃게 된 사건이었다.

당국이 이 사건을 아쉬워한다면 황 전 회장의 일도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열 도둑을 놓쳐도 한 명의 억울한 사람이 생기면 안 된다. 금융사 임직원을 제재하는 제재심의위원회를 독립기구로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 왜 당국 내부에서 나오는지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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