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특파원칼럼/12월 31일] 除夜에 희망을 꿈꾼다

백년 만에 한번 올까말까한 금융위기로 뉴욕 맨해튼의 월스트리트는 쑥대밭이 됐지만 올해도 어김없이 타임스스퀘어에서는 새해맞이 축제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다. 타임스스퀘어 새해맞이 행사는 9,000여개의 발광 다이오드로 치장한 이브 볼(Eve Ballㆍ除夜의 공) 하강 쇼가 하이라이트인데 현란한 빛을 발산하는 이브 볼이 새해 60초 전 카운트다운과 함께 내려오고 정오에 화려한 불꽃놀이와 함께 오색종이가 흩뿌려지면 축제는 절정으로 치닫는다. 지난 1907년부터 시작됐다는 이브 볼 하강 쇼는 해마다 전세계 수백만 명의 시청자를 TV 앞에 붙잡고 수십만의 인파를 브로드웨이 일대로 불러 모은다.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서 보려고 적지 않은 사람들이 영하의 강추위에 밤샘 노숙을 하기도 한다. 1년 전 이브 볼이 타임스스퀘어를 내려올 때 누구든 희망찬 새해를 꿈꿨다. 뉴욕 월가는 다우지수 1만6,000포인트를 기대했고 경기침체는 기우에 그치기를 바랐다. 월가가 지금처럼 처참히 망가질 것이라고는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다. 베어스턴스와 리먼브러더스가 간판을 내렸고 내년 봄이면 세계 최대 증권사인 메릴린치는 뱅크오브아메리카(BoA)에 합병돼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월가의 수입으로 먹고 사는 뉴욕시도 재정 파탄에 빠졌다. 내년도 재정 적자 35억달러에 이어 그 이듬해는 80억달러로 늘어날 것이라는 게 뉴욕시의 추산이다. 마이클 블룸버그 뉴욕시장은 공공서비스 축소와 소득ㆍ판매세 인상 등을 검토, 뉴요커의 등골이 휘게 생겼다. 시 재정난에 뉴욕 경찰들은 요즘 교통딱지 떼기에 혈안이다. 교통흐름에 방해가 되지 않는다면 자동차든, 보행자든 횡단보도 신호위반은 눈감아주던 예전의 그들이 아니다. 빨간불이 켜진 횡단보도를 주저 없이 건너가면 뉴요커이고 곧이곧대로 신호를 지키면 관광객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무색해졌다. 월가의 위기 앞에 뉴욕 경찰마저 재정수입 전선에 내몰리는 세태다. 그 어느 해보다 파고 높고 바람이 세찼던 무자년 한해가 저물어간다. 오늘 밤 보신각 제야의 종이 울리면 수많은 사람들은 희망을 꿈꿀 것이다. 지금은 힘들지라도 담대한 희망을 안고 새해를 맞이할 수 있는 것 자체만으로도 다행스러운 일이다. 안전벨트를 단단히 매라는 주변의 경고가 줄을 잇지만 거칠고 긴 항해를 앞두고 오늘 하루만이라도 희망을 꿈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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