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17년 권좌' 재정위기에 무릎 꿇었지만 시장 불안감 여전

[■ 베를루스코니 사퇴 이후는]<br>중도우파 연정·거국 내각서 조기총선 실시 방안등 거론<br>EU, 伊재정상태 감시 착수… 국채 수익률은 연일 최고치


구제금융설까지 나돌았던 이탈리아의 재정위기가 숱한 위기에도 17년 동안이나 이탈리아를 통치해왔던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총리를 권좌에서 물러나게 만들었다. 베를루스코니 총리는 그동안 51차례의 신임투표를 통해 불사조처럼 버텨왔지만 결국 시장의 힘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베를루스코니 총리는 8일 의회에서 2010년 예산 지출 승인안이 가까스로 가결된 후 성명을 통해 “당이 의회에서 다수당의 지위를 잃어버렸다”며 EU가 제안한 긴축재정안이 의회에서 승인될 경우 총리 자리에서 물러나겠다고 발표했다. 이날 이탈리아 의회는 2010년도 예산 지출 승인안을 통과시켰으나 베를루스코니 총리는 전체 630표 중 308를 얻는 데 그쳐 과반수를 넘지 못했다. 그는 이날 표결에 큰 충격을 받은 듯 “국회가 마비됐다”고 하는가 하면 표결과정에서 휘갈겨 쓴 쪽지에 탈당 의원들을 ‘배신자’라고 지칭한 것이 TV 카메라에 포착되기도 했다. 현 총리 사임 이후에는 현재의 중도우파 연정을 확대하는 방안과 거국내각을 구성하는 방안, 의회 해산 후 조기총선을 실시하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차기 총리로는 마리오 몬티 전 EU 위원, 지아니 레타 내각차관, 안젤리노 알파노 자유국민당 사무총장 등이 폭넓게 거론된다. 대통령실은 일단 정치인보다는 테크노크라트(전문관료)를 중심으로 새 내각을 꾸리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베를루스코니 총리는 사퇴를 결정한 후 현지 민영방송 카날5와의 인터뷰에서 "가장 우려해야 할 점은 우리가 진지하다는 것을 시장에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라며 “누가 정부를 이끌어갈지는 그 다음에 걱정할 문제”라고 강조했다. 정치 혼란의 근원이자 긴축안 이행에 소극적이었던 베를루스코니 총리가 정치일선에서 물러남에 따라 국제금융계에서는 일단 최악의 상황은 비켜갔다는 안도감을 보이며 발 빠른 후속대책 마련에 돌입했다. 유럽연합(EU)은 9일부터 이탈리아 재정상태에 대해 감시에 착수하는 등 신용불안이 확산되는 것을 막기로 했다. 이에 앞서 지난 4일 폐막된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는 이탈리아를 지목해 재정건전성 강화를 위해 노력해달라는 구체적인 주문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이탈리아가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재정위기의 한복판으로 들어서고 있다는 신호는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이탈리아의 국채 수익률이 연일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는 가운데 8일(현지시간) 10년물 국채금리는 6.742를 기록해 1999년 유로존 출범 이후 최고치로 높아졌다. 때문에 이탈리아가 정치적 안정을 되찾을 경우 가파르게 치솟던 국채금리가 다시 하향안정세로 돌아설지 여부가 최대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사실 이탈리아의 재정상황이 유로존의 다른 국가들에 비해 심각한 수준은 아니라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이탈리아의 재정적자 규모를 국내총생산(GDP)의 4% 수준으로 예상하고 있다. 유로존 평균인 6%보다 낮은 수준이다. 이탈리아의 정부 부채는 현재 GDP 대비 120% 정도로 높은 편이지만 이 또한 전혀 새로운 문제는 아니다. 이탈리아의 정부 부채는 1991년 이후 계속해서 GDP 대비 100%를 상회하고 있다. 또한 이탈리아인들은 재정위기를 겪고 있는 스페인이나 아일랜드와 달리 주택담보대출로 인한 빚도 거의 없다. 실제 이탈리아의 재정적자는 대부분 국채 이자 지급 때문에 생긴 것이다. 이를 제외할 경우 기초 재정수지는 흑자를 유지하고 있다. 유로권에서 이 수지가 흑자를 기록하고 있는 나라는 독일과 이탈리아뿐이다. 다만 재정상황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수년째 계속되고 있는 낮은 경제 성장률로 경제가 파탄 날 지경에 처했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경제는 지나친 규제와 높은 법인세, 인구 고령화, 투자감소 등으로 지난 15년 동안 연평균 0.75%의 경제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다. 이는 이탈리아가 매년 지불하는 채무 이자율보다 낮은 것이다. 결국 고질적인 정치권의 병폐가 이탈리아 재정위기의 발목을 잡아온 셈이다. 이제 이탈리아는 정치 리스크에서 벗어날 절호의 기회를 맞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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