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이성태 한은총재 내정자에 바란다] <상> 박승 뛰어 넘어라

정부와 원만한 협조관계 더 힘써야<br>'강한 소신, 오히려 마이너스 가능성' 새기고<br>'정부와 주고받기' 실용주의 정책도 무게를


이성태 한국은행 부총재가 4년 임기의 신임 한국은행 총재의 바통을 이어받게 됐다. 역대 총재 가운데 줄곧 한은에 근무하다 내부 승진한 케이스로는 두 번째다. 그만큼 한은 직원들은 물론 시장과 기업ㆍ국민들이 총재 내정자에 거는 기대는 남다르다. 총재 내정자가 통화신용정책과 중앙은행의 위상을 한단계 업그레이드하기 위해서 풀어야 될 과제를 시리즈를 통해 점검해본다. 취임 초기 거침없는 입담으로 시장의 비난을 사기도 했던 박승 총재는 임기 후반으로 갈수록 노련함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통화정책에서 일관성과 함께 예측 가능성을 보여줌으로써 시장에서는 “연임해도 무방하다”는 찬사까지 나왔다. 대학교수와 경제수석, 건설교통부 장관 등을 거치며 한국 경제에 대한 뚜렷한 소신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한은의 한 국장은 “박 총재는 정부와의 관계에 있어서도 줄 것은 주고 받을 것은 받는 실용주의자”라고 평가했다. 실제 지난해 한국투자공사(KIC) 출범과정에서 외환보유액의 일부를 위탁하는 문제나 신용불량자 채무 재조정을 위해 한은이 산업은행 특별대출을 통해 자산관리공사에 우회적으로 지원하는 일 등은 모두 한은과 정부와의 타협의 산물이며 박 총재의 유연한 협상 스타일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덕분에 한은은 금리인상에 있어 비교적 자유로운 선택을 할 수 있었다는 후문이다. 이성태 총재 내정자는 박 총재와 스타일이 사뭇 다르다. 그를 겪어본 사람들은 한은의 독립성이 결코 퇴보하는 일은 없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동안 이 총재 내정자는 원칙을 중시하고 통화정책에 관한 한 부당한 외부압력에 정면으로 맞서는 모습을 보여왔다. 지난 90년대 초 투신사에 한은 특융을 단행할 당시 자금부 부부장으로 재직했던 이 총재 내정자가 투신사에 대한 특융이 불합리하다며 서류 서명에 반발한 일화는 지금도 유명하다. 지난 2003년 한은법 개정을 위한 국회 소위에서 정부가 금통위원들에게 부당한 외압을 행사한 사례가 있다고 폭로할 정도로 강한 소신을 보여주기도 했다. 상당수 한은 직원들은 이 총재 내정자를 두고 “적도 아군도 없다”는 표현을 자주 쓴다. 그만큼 원리원칙에 따라 업무를 처리해왔으며 한은의 위상에 대한 철학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다만 39년 동안 한은이라는 외길을 걸어온 자존심과 강직한 품성이 오히려 마이너스가 될 수도 있다는 우려도 있다. 이 총재 내정자의 그동안의 스타일로 볼 때 한은의 설립취지에 맞지 않다고 판단되는 사안, 즉 재정이 감당해야 될 일에 대해 한은이 특별대출이나 지원을 하는 일은 앞으로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때문에 정부와 한은의 정책공조 과정에 생길 변화에 대해 촉각을 세우는 직원들도 적지않다. 한은의 한 관계자는 “박 총재로 인해 통화신용정책의 독립성이 많이 올라갔다고 해도 정부와의 관계는 여전히 풀어야 할 숙제”라고 말했다. 박 총재도 마지막 기자간담회에서 “현재 중앙은행의 독립성이 과거에 비해 엄청나게 발전했지만 중앙은행을 존중해주는 풍토, 문화의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고 밝혀 정부와의 협조관계는 신임 총재가 풀어야 될 과제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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