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조선해양 인수를 위한 한화그룹 컨소시엄의 주축인 ㈜한화ㆍ한화석유화학ㆍ한화건설이 26일 각각 긴급 이사회를 열고 “본계약 시기를 실사 완료 이후로 연기하거나 이에 준하는 보완장치가 마련돼야만 본계약에 응할 수 있다”고 결의한 것은 한화의 입장을 공식적으로 밝히는 ‘배수의 진’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한화그룹 측은 다시 한번 “오는 29일 자정까지 산은의 반응이 없을 경우 본계약을 거부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최종 압박카드인가=한화그룹은 지난 24일까지만 해도 “산은이 잔금 납입 시기 등에서 융통성을 보이지 않을 경우 본계약을 거부한다”는 내부 방침만 확정한 상태였다. 산은 측은 이에 대해 “한화가 입장을 공식화하지 않은 채 언론을 통해서만 자신들의 뜻을 흘린다”며 불쾌해 했다. 그러나 이날 한화그룹 컨소시엄 주력 3개사가 이사회를 통해 본계약 연기 등을 결의해 공식입장을 굳혀 이제 공은 산은 측으로 완전히 넘어가게 됐다. 이번 한화그룹 3개사의 이사회 결의 내용은 ▦실사 후 본계약과 ▦실사를 못한 데 대한 보완장치가 마련될 경우 29일 일정대로 본계약 등의 두 가지로 요약된다. 여기서 한화 측이 밝힌 ‘보완장치’란 가격 협상에 대한 여지를 넓혀야 한다는 의미다. 한화그룹의 한 고위관계자는 “양해각서(MOU)대로라면 실사 후 가격 조정폭은 3%에 불과한데 이는 실사 개시도 못해본 쪽에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이라고 강조했다. 한화그룹 3개사 이사회도 “최근의 수주 취소, 신규 수주 부재 및 잠재부실 발생 우려 등이 대우조선해양의 가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우려가 상당하다”면서 ‘실사 없는 본계약’의 위험성을 지적했다. 아울러 3개사 이사회는 한화그룹 인수 태스크포스에 대해 “만일 본계약을 하더라도 산은이 끝내 실사가 가능한 환경을 만들지 못할 경우 한화 측이 먼저 계약을 해지할 수 있는 조건도 계약 내용에 삽입하라”는 지침을 그룹 측에 전달했다. 이는 대우조선해양 노조에 가로막혀 실사 개시를 못한 데 대한 책임소재가 산은 측에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하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발빼기 명분위한 수순인가=한화 3개사의 이번 이사회 결의가 사실상 대우조선해양 인수전에서 발을 빼기 위한 명분을 쌓기 위한 수순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최근 갑자기 닥친 천재지변의 시장 상황으로 볼 때 이미 대우조선해양 인수는 불가능해졌고 본계약 거부를 3개사 이사회를 통한 공식적인 경영행위의 결과로 형식화하려는 의도라는 것이다. 실제로 한화그룹은 ▦그룹 보유 현금 약 1조원 ▦은행권 인수금융 약 1조5,000억원 ▦보유 부동산 매각으로 약 1조원 ▦대한생명 등 비상장 우량 계열사 지분 매각으로 1조원 ▦국민연금 등 국내외 재무적 투자가로부터 2조원가량을 조달해 인수자금을 확보할 계획이었으나 금융 및 부동산 시장 냉각으로 자금 마련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만일 고금리를 요구하는 재무적 투자가로부터 억지로 자금을 끌어들여 협상을 성사시킨다고 해도 한해에 수천억원씩 하는 이자를 감당하다가는 그룹 전체가 위험에 빠질 것이라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이날 3사 이사회에서는 “양해각서(MOU)대로 인수를 감행할 경우 기존 주주들의 권리가 크게 훼손될 수 있다”는 점도 지적됐다. 주주 이익이라는 명분을 고려해도 이번 딜은 무리라는 뜻이다. 한화갤러리아ㆍ한화리조트 등 계열사 매각설이 시장에 나도는 것도 한화그룹 측에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한화그룹의 한 관계자는 “만일 시장에 내놓는다고 해도 현재 상황서 단기에 매각이 되겠느냐”면서 “괴소문이 해당 회사 구성원과 주주들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것도 곤혹스러운 대목”이라고 강조했다. ◇계약이 깨질 경우는=산은 측이 원칙을 고수해 이번 딜이 깨질 경우 그 파장은 넓고 깊다. 한 외국계 투자은행 관계자는 “대우조선해양 외에도 하이닉스 등 매각건도 줄줄이 장기 표류할 가능성이 크며 대우조선해양을 재입찰에 붙이는 데도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진단했다. 실제 산은도 상당한 고민에 빠진 것으로 알려졌다. 대우조선해양 시가총액은 이날 기준 3조원 수준으로 매각대상 지분인 51.4%를 감안하면 현재의 가치는 1조5,000억원을 조금 넘을 뿐이다. 이 상황에서 서둘러 재입찰에 붙일 경우 공적자금 회수 극대화라는 목표를 이루지 못하고 장기적으로 주가 회복을 기다리자니 민영화 등 산은의 자체 일정에 장애가 된다. 10대그룹 한 고위관계자는 사견임을 전제한 뒤 “실사가 완료된 뒤 본계약을 체결하는 쪽으로 양측이 합의하는 것이 장ㆍ단기적으로 가장 현명한 방법이라고 본다”는 견해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