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심층진단] 고위공무원단제 출범

공직사회도 무한경쟁 시대 돌입<br>"순혈주의 탈피" 올 고위직 27% 민간·他부처에 개방<br>직무·성과위주로 전환, 정책 실효성 제고 기대<br>보직경쟁 격화땐 공정성·정치적 중립 훼손 가능성<br>장기관점보다 단기실적 치중 우려등 극복 과제


정하경 중앙인사위 고위공무원지원단장


”지방행정 분야에서만 20여년을 근무했기 때문에 예산, 재정 업무는 생소했습니다. 처음엔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지만 이제 지난 경험이 국가 전체적 관점에서 정책을 입안하고 조정하는 능력을 키우는 데 귀중한 기회가 된 것 같습니다.” 기획예산처에서 1년간 균형발전재정기획관으로 근무하다 최근 ‘친정’인 행정자치부로 복귀한 박재영(53) 국장은 부처간 교류의 순기능을 잘 보여준다. 박 국장의 경험은 ‘부처 이기주의’나 한 부처에 장기간 근무함으로써 생기는 편협한 관점을 벗어나 포괄적이고 균형잡힌 시각을 갖게 해 준 사례로 평가된다. 중앙인사위원회가 지난 수년간 시범 도입해 온 국장급 교류 프로그램이 7월 1일부터 고위공무원단 제도로 본격 출발한다. 이 제도가 과연 공직사회의 ‘동종 교배’와 ‘순혈주의’를 허물고 성과와 혁신의 새 바람을 일으키게 될지 아니면 공직 사회 불안정의 또 다른 요인이 될지 주목되고 있다. ◇“동종 교배ㆍ순혈주의를 극복하라”=이달부터 출범하는 고위공무원단 제도는 정부 중앙부처에 있는 각 1~3급 실ㆍ국장들의 소속 및 계급 구분을 모두 없애고 하나의 풀(pool) 안에서 고위공직자 그룹을 별도로 분리, 운영하는 인사시스템이다. 민간과 정부, 또 특정 부처내 시각을 뛰어 넘어 범정부적 차원의 정책 평가 능력과 시각을 갖는 우수한 공직자를 선발, 육성하다는 게 목표다. 이 제도가 도입되면 기존의 신분적 계급 질서에 익숙한 우리 공직 사회가 직무와 성과 중심으로 획기적으로 바뀌게 돼 정부 정책의 실효성과 신뢰성이 크게 높아질 것이라는 기대다. 개개 공무원의 입장에서는 소속 부처를 벗어나 민간과 타 부처 소속 공무원들과 무한 경쟁을 돌입하게 된다. 연말에 성과 평가를 실시해 업무 성과가 높으면 보다 좋은 자리와 푸짐한 성과급을 받지만, 근무성적이 나쁘면 무보직 상태로 지내다 일정 기간이 지나면 퇴출 대상이 될 수도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최근 국무회의 석상에서 “고위공무원단 제도를 도입해 동종교배 인사를 극복하지 않으면 공무원 조직은 침체하고 경쟁력을 상실한다. 이제 공직사회도 민간영역과 경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근친간 짝짓기, 동종 교배를 벗어나 외부로부터 새로운 인재를 수혈 받아야 공직사회가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정치권 줄대기ㆍ정실인사 등 우려 =중앙인사위원회에 따르면 이 달부터 민간이 참가하는 개방형 직위 162개, 타부처 소속 공무원들과 경쟁하는 공모직위 196개 등 모두 358개 직위의 문호가 개방된다. 올해 고위공무원으로 편입되는 공직자 수가 1,305명임을 고려하면 모두 27.4%의 고위직이 개방되는 셈이다. 최근 개정된 ‘개방형 직위 및 공모직위 운영규정’에는 각 부처별로 고위직 총수의 20% 이내에서 개방형 직위를, 30% 이내에서 공모직위를 지정ㆍ운용할 수 있도록 했기 때문에 앞으로 개방되는 자리는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그러나 이 제도가 제대로 정착되기까지는 공직사회 안팎에서 제기되는 여러 문제가 걸림돌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우선 정권의 향배에 따라 큰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정부 고위직 인사에서 정치권 줄대기와 정실인사를 차단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 정부의 핵심부서 인사들이 타 부처까지 영향력을 확대, 부처 공무원들간에 위화감이 조성될 수도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나아가 고위공무원단 소속으로 살아남기 위한 보직 경쟁이 격화되면 공정성을 최우선으로 해야 할 공직사회마저 집권세력의 성향이나 이념에 경도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이 경우 고위공무원단이 직업공무원이라기보다 정무직처럼 운영돼 정치적 중립성이 크게 훼손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이 밖에 성과에 따라 인센티브가 큰 차이가 나게 되면 국가 정책이 장기적 관점이 아닌 단기적인 방향에서 실적위주로 운영될 수 있다는 것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 중앙인사위원회 관계자는 “고위공무원단 소속 공무원들이 정치적인 편향성을 띌 수 있다는 지적은 지나친 우려”라며 “고위공무원의 경우도 정치적 중립 의무와 신분보장의 대상이 되기 때문에 직업공무원의 성격은 그대로 유지될 것”이라고 말했다. ■ 연봉 어떻게 바뀌나 현 3급국장 연봉 최대 20% 차이난다 "민간 인재 유치위해 성과급 확대등 보수체계 더 차별화" 고위공무원단의 출범에 따라 이에 소속된 공무원들이 받게 되는 연봉에도 상당한 변화가 뒤따르게 된다. 소속 공무원들의 연봉구조는 현행 연봉제와 동일하게 기본연봉과 성과연봉으로 구분되지만 직무등급별로 차등화하기 위해 기본연봉을 '기준급'과 '직무급'으로 세분화시켰다. 기준급은 호봉 개념으로 적용되며, 직무급은 직무의 곤란도와 책임의 정도에 따라 '가-나-다-라-마'의 5등급으로 차등화돼 있다. 우선 직무급에서만 최대 960만원의 연봉 격차가 생길 수 있다. 여기에 성과급까지 반영하면 현행 3급 국장 총연봉을 기준으로 최대 1,177만원, 즉 20.5%의 차이가 나게 된다는 것이 인사위의 설명이다. 3급 국장의 경우 평균 기준급 5,500만원과 가장 많은 직무급 '가'급 1,200만원, 최우수 성과급 217만2,000원을 받게 되면 총 연봉이 6,917만2,000원이 된다. 앞으로 성과급 비중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중앙인사위가 현행 전체 연봉대비 1.8% 수준인 성과연봉 비중을 더욱 확대해 나간다는 방침을 세웠기 때문이다. 일찍부터 고위공무원단 제도를 도입하고 있는 미국, 영국 등 선진국들도 우수한 민간 인력을 확보하기 위해 일반 공무원과는 달리 고위직들에겐 비교적 높은 급여를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은 78년부터 '공무원개혁법'에 의거, 고위공무원단제도(SES: Senior Executive Service)를 도입, 운영하고 있다. 인사위 관계자는 "고위공무원단 제도가 정부 정책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것인 만큼 우수한 성과를 내는 공무원에게 더 많은 보상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며 "특히 민간의 우수 인재 유치를 위해서는 보수체계를 더욱 차별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 정하경 중앙인사위 고위공무원지원단장 일문일답 "2년이상 임기 보장 전문성 저하 방지" "정부 정책의 핵심적 역할을 하는 고위직을 범정부적 차원에서 적재적소에 활용하고 개방과 경쟁을 확대, 정부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것입니다." 지난해 1월부터 실무추진단장을 맡아 고위공무원단 제도의 실질적인 산파역을 해 온 정하경(사진) 중앙인사위원회 고위공무원지원단장은 이 제도가 공직 사회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으로 확신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 고위공무원단제도가 도입되면 인사관리에 어떤 변화가 생기나. ▦ 이제 중앙행정기관의 모든 1~3급 공무원들은 '고위공무원단소속 공무원'이 되어 범정부적 관리의 대상이 된다. 이들에 대한 호칭에서 '관리관', '이사관' 등 신분적 계급 명칭은 없어지고 대신 '~국장', '~실장' 등 직위명칭만 남게 된다. 대통령이 수여하는 임용장에도 계급은 표시되지 않고 직위만 남는다. - 정치권 줄서기, 코드인사, 정실인사 등에 대한 우려도 있는데… ▦ 정반대다. 오히려 정실인사 하기가 더 어려워진다. 이 제도가 도입되면 부처별로 소속 직위의 20%는 개방형(민ㆍ관 경쟁)으로, 30%는 직위공모(부처간 경쟁)를 통해 외부에서 채워야 한다. 선발심사 때도 민간인이 절반이상 참여해 자격요건과 전문성을 기준으로 심사를 한다. 이 같은 상황에서 자연히 인사권자의 재량 남용 소지는 적어진다. 또한 공무원의 정년과 신분보장제도는 그대로 유지되므로 정치적 중립성이 훼손될 우려도 전혀 없다. - 부처간 이동을 활성화하면 공무원의 전문성이 떨어지지 않나. ▦ 직위 공모 때 반드시 직위별 자격요건을 사전에 설정, 해당분야 전문성을 갖춘 자를 뽑도록 돼 있다. 역량과 자격을 갖춘 자만이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더구나 해당직위에 임용되면 최소 2년이상 일하도록 보장해 전문성 저하를 방지해 나갈 것이다. - 경제부처 등 영향력 있는 특정부처 출신이 자리를 독식할 것라는 우려에 대해서는… ▦ 공모 직위에 선발되려면 해당 직위의 자격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소속 부처에서 성실하게 전문성을 축적한 공무원이 타 부처 출신에 비해 경쟁에서 유리할 수밖에 없다. 인사위는 특히 제도 운영과정에서 고위직 이동이 지나치게 특정부처에 편중되지 않도록 탄력적으로 조정해 나갈 계획이다. - 공직사회는 민간기업처럼 실적을 계량화할 수 없는 부분이 많을 것 같은데… ▦ 공직의 경우 성과를 계량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지표가 많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래도 선진국에서는 정부행정에 맞는 성과관리시스템을 발전시켜 왔고, 이는 우리에게도 많은 시사점을 준다. 중앙인사위는 우리 실정에 맞는 '직무성과계약제'를 개발했고 이를 고위공무원단의 성과측정에 적용할 것이다. 고위직들은 연초에 본인과 상급자가 맺은 직무성과계약에 따른 평가 결과를 기초로 하여 성과연봉을 받게 된다. - 계급이 사라진다고 하나 새로 생기는 직무등급이 결국 계급 개념 아닌가. ▦ 계급은 사람에게 부여하는 서열이지만 직무등급은 직무에 부여하는 서열이다. 계급이 신분적 개념이라면 직무등급은 직무 값에 따른 연봉등급이라고 보면 된다. 개념이 근본적으로 달라 계급제의 폐해가 반복되지는 않을 것이다. 인사위는 직무등급이 계급의 대체개념으로 오인되는 것을 막기 위해 직무등급은 직무급 차등지급의 기준으로만 활용하고, 그 외 직무등급에 따른 인사나 보수상 차등은 최소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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