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동십자각/1월 29일] 금융규제완화와 경계심

‘007’시리즈 ‘카지노로얄’에서는 주식시장의 투자기법을 범죄와 연결시킨 흥미로운 장면이 나온다. 국제테러집단이 우간다 반군의 자금을 굴리기 위해 한 대형 항공회사의 주식을 대량으로 공매도한 후 주가를 폭락시켜 차익을 노릴 목적으로 그 항공사의 신형 여객기를 폭파하려는 시도를 제임스 본드(대니얼 크레이그)가 막는 장면이다. 선진 금융시장의 중심지인 영국에서 공매도와 같은 투기적 매매기법을 범죄의 수단으로 묘사한 영화 제작자의 시각이 이채롭다. 영화와는 다르게 투기세력에 대한 세계 각국 금융당국의 시각은 다소 유연하다. 지난해 9월 리먼브러더스 파산 후 공매도를 금지했던 나라들도 한국ㆍ호주ㆍ일본 등 몇몇 국가를 제외하고는 상당수가 공매도 금지를 해제하고 있다. 국내도 주식시장이 다소 안정을 찾아가자 외국계 증권사는 물론 국내 증권사들이 공매도 규제완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늘고 있다. 금융감독 당국이 당분간 공매도 금지를 유지한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지만 달라진 주변상황을 주시하고 있는 모습이 심상치 않다. 시장에 대한 유연한 시각은 필요하다. 하지만 또 다른 위기에 대한 대처 없이 경계심을 푸는 것은 위험하기 짝이 없다. 여전히 증시에서 막강한 외국인의 힘을 보면서, 그리고 외국계 증권사가 작심하고 쓴 ‘매도’ 보고서가 공매도로 재미를 보려는 음모라며 화들짝 놀라는 우리 시장의 처지를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정책ㆍ감독 당국의 긴장의 끈이 느슨해보이는 데 조바심을 느끼는 것은 비단 증시뿐만이 아니다. 기업들의 자금사정이 다급한 데 ‘돈맥경화’의 병인을 없애기 위한 구조조정의 강도는 점점 약화되고 있다. 잠시 위기로 인한 동통이 가셨다고 해서 금융시스템이 정상화될 것이라고 기대하는 꼴이다. 닷새 후면 ‘자본시장통합법’이 시행된다. 법 시행으로 기존 자본시장 규제의 40% 정도가 폐지되거나 완화된다. 큰 족쇄들이 풀리는 것이다. 하지만 법 시행 초기에 규제완화보다 위기에 대처하고 시스템이 제대로 돌아가도록 미흡한 법규를 정비하는 게 더 급하다. 최근 호주 금융 당국은 공매도 금지 조치 시한을 오는 3월까지 다시 늘리기로 했다. 호주가 금융위기를 비교적 잘 이겨내고 있는 것은 자통법과 같은 성격의 ‘금융서비스개혁법(FSRA)’ 덕보다는 엄격한 위험관리와 적절한 규제정책 때문이었다는 앨런 캐머런 전 호주 증권투자위원회 위원장의 지적을 상기해볼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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