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수필] 골프와 실패의 자유

게임에서 이긴다는 것은 의례 그런 것이겠지만 나도 잘해야 하지만 상대가 못해줘야 하는 것도 있다. 상대방의 실수가 있어야 승리의 트로피를 안을 수 있다. 페어플레이를 강조하는 스포츠 세계에서 선수가 이런 흑심을 앞세우지는 않겠지만 기대감만은 부인할 수 없을 듯하다.슈퍼 땅콩 김미현과 루키 박세리가 연 2주에 걸쳐 미 LPGA에서 승리를 하게된 과정에는 공통점이 있다. 경쟁자들의 실수로 우승컵을 헌납받았다는 사실이다. 김미현의 경우는 상승세를 타고 1타차로 추격해오던 경쟁자가 공에 앉은 나비를 쫓다가 2벌타를 맞아 주저앉은 게 결정적이었다. 나중에 벌점 판정이 번복되었지만 경쟁자는 보기를 범하는 등 지리멸렬했다. 박세리의 경우는 한때 박선수와 4타차나 벌려 놓고 종반행진을 하던 케리 웹 선수가 마지막 18홀(파 5)에서 치명적인 더블 보기를 하는 바람에 1타차를 지키지 못하고 무너져 승리를 했다. 골프뿐 일까. 경쟁의 마당은 다 그런 속성을 지닌다고 할 수 있다. 국제간의 경제게임도 그렇다. 엔화가 올라가면 한국쪽 수출은 늘어나고 경기도 좋아진다. 일본 상품이 가격경쟁에서 밀려야 한국 상품의 시장이 넓어진다. 타이완 상품이 죽을 쒀야 부산항을 떠나는 국제 컨테이너선이 러시를 이룬다. 정치 쪽으로 가면 이런 속성이 더 강하다. 상대 세력이 죽을 쑤고 있으면 벌점이 가산돼 「자연 뻥」이 된다. 정책대결은 없고 정치공세만 편다고 야단 맞고 있지만 정당들이 계속 같은 방식만 탐닉하고 있는 것은 그것을 실속있는 표 모으기로 보고 있기 때문인 듯싶다. 이 방법에 빠지다 보면 상대 실수를 유발시킬 함정을 만들어 내기에 바빠진다. 관전자의 입장에서 보면 정말 치사한 게임이다. 김미현이「나비 사건」을 일으켜 물고 늘어졌다면 그는 진정한 챔피언이 아니다. 박세리의 당당한 우승도 실패의 책임이 케리 웹에게 있었기 때문이다. 정치세력과 산업세력· 여당세력과 야당세력은 지금 한판 치열한 게임을 벌이고 있다. 이럴때 이니셔티브를 잡고 있는 한쪽 세력이 벌측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만들어 내고 마음대로 재단하는 일은 없는지 궁금하다. 새판을 만들어 게임을 하자는 것까지는 좋은데 상대의 실패와 실수를 유도하는 쪽으로만 시나리오를 만들기에 급급해서는 안될 일이다. 실패의 자유는 전적으로 상대의 것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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