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과 청와대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 처리를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한미 FTA 발효 후 3개월 이내 재협상 요구' 제안까지 내놓은 상황에서 민주당이 이마저도 거부한다면 '단독처리'라는 강수를 둘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여야 합의 처리를 주장하던 협상파도 민주당의 '몽니 부리기'에 돌아서는 분위기다.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는 16일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최고위원∙중진의원 연석회의에서 "어제 대통령의 파격적인 제안은 그동안 민주당이 주장해온 '협정 발효 후 3개월 내 투자자국가소송제도(ISD)의 유지 여부 협상 시작' 주장을 100% 수용하는 결단"이라며 "한마음으로 이 문제를 처리할 시점이 왔다"고 밝혔다. 이날 회의에 참석한 의원들도 모두 "처리할 때가 됐다"는 의견에 힘을 실었다. 유승민 최고위원은 "국회가 한미 FTA를 조속히 처리하는 계기가 마련될 때가 왔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예산안 강행 처리 이후 몸싸움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서명했던 김장수 최고위원 역시 "야당에서 새로운 제안이 아니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할 때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지 특단의 대책을 수립해 시행해주실 것을 부탁 드린다"며 사실상 단독처리를 촉구했다.
홍 대표와 당내 재선의원들 간의 오찬 회동에서도 만장일치로 한미 FTA 비준안 처리에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루 전에 있었던 3선 이상 중진들과의 오찬회동에서도 대부분 조속한 처리의 필요성을 공감하는 방향으로 의견을 모은 바 있다.
당내 분위기가 단독처리 쪽으로 쏠리며 협상파 의원들의 선택이 주목 받고 있다. 여야 합의처리를 촉구한 8인 성명에 참여했던 황영철 의원은 서울경제신문과의 통화에서 "최대한 협의를 위해 노력하지만 결국은 표결을 할 때가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며 단독처리 가능성을 열어두었다.
청와대는 이 대통령의 국회 방문 이후 '공은 국회로 넘어갔다'는 입장을 밝히며 한미 FTA 비준 처리가 서둘러 진행되기를 기대했다. 여야 합의 처리냐, 여당 단독처리냐는 방법의 문제는 국회의 결정이라는 입장이지만 청와대의 속내는 단독처리라도 한미 FTA를 매듭 지을 시점이라고 보고 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대통령과 청와대가 할 수 있는 일은 다한 만큼 국회의 합리적 결정을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ISD 재협상 요청은 행정부 권한인 만큼 행정부의 수반인 대통령이 약속을 했으니 할 수 있는 일은 다한 것"이라며 "이제 국회가 합법적 절차에 따라 비준해주기를 기다린다"고 덧붙였다.
청와대는 전날 이 대통령의 파격적 제안으로 민주당이 더 이상 한미 FTA 비준에 반대할 명분을 잃은 것으로 보고 있다. 이 대통령의 국회 방문으로 정부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보완책과 설득 노력을 기울이며 여론의 방향도 어느 정도 돌아섰다고 판단하는 청와대는 민주당의 한미 FTA 반대가 결국 반대를 위한 반대로 여론의 지지를 잃을 것으로 보고 있다.
청와대는 민주당이 이러한 상황에서도 FTA 비준에 반대한다면 한나라당이 단독처리를 고려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는 입장이다.
청와대는 미국 통상당국이 ISD 재협상 문제에 대해 "논의할 수 있다"는 공식입장을 밝힌 데 대해 부속 서한에 '협정 발효 후 이의가 있는 조항에 대해 3개월 이내 재협상할 수 있다'고 명시된 만큼 '당연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면서 미 정부가 앞서 ISD 재협상에 난색을 표했다고 알려진 것은 절차상 FTA를 비준도 하기 전에 재협상을 하는 것은 어렵다는 뜻을 내비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정부는 미 당국과 FTA 발효 후 재협상 문제를 어떻게 다룰지를 놓고 실무선에서 긴밀한 사전 조율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