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달려 작년부터 17% 고금리 사용/자기자본 비율 2.9%… 30대그룹중 최하위수준/주거래은 자금여유 없어 “설상가상”삼미그룹은 지난 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잘 나가던 기업」이었다.
지난 68년 한국종합특수강과 삼양특강을 합쳐 설립한 삼미특수강으로 철강산업에 진출, 87∼89년에는 재계랭킹 17위에 진입, 전성기를 누렸다. 그뒤에도 「세계최대의 특수강기업」에 오르기도 했다.
그런데 이제 삼미호의 닻을 내려야 할 지경이 됐다. 근본적인 이유는 지난 89년 북미 특수강공장을 인수하면서 부터. 삼미특수강은 단독투자로 캐나다의 아틀라스사와 미국의 알텍사를 인수했다. 그러나 시설투자에 들어가는 2억2천만달러의 증자에 따른 자금난은 그룹전체를 압박했다.
90년대 들어 창원공장의 생산능력을 연산 50만톤으로 늘리기 위해 추진한 3천억원대의 투자도 제품이 햇볕을 보기도 전에 불어닥친 특수강 경기 불황으로 짐이 됐다. 결국 삼미가 마지막 카드인 법정관리를 신청한 것은 무리한 기업확장으로 인한 자금난과 예기치 못한 불황이 겹쳤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경기부진과 자금난으로 부채는 2조원으로 늘어났다.
삼미그룹은 재무구조가 극히 취약하다. 한국은행이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삼미그룹의 자기자본비율은 2.9%(총자산 2조4천7백20억원에 자기자본 7백24억원)로 30대그룹 가운데 최하위 수준. 삼미 관계자는 『자금압박에 따라 지난해부터 17% 이상의 고금리 자금을 썼다』고 털어놨다. 삼미의 지난 한해 금융비용은 무려 2천3백44억원에 이르렀다. 여기에 삼미특수강의 주거래은행인 제일은행이 유원건설과 한보그룹의 잇단 부도로 휘청거리면서 자금운용에 여유가 없어진 점도 삼미의 숨통을 죄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삼미가 자구노력의 일환으로 지난해말 부터 추진해온 포항제철과의 창원공장 봉강·강관설비 및 북미법인 매각협상이 당초 뜻대로 이뤄지지 못한 것도 삼미의 몰락을 가속화시켰다. 포철은 창원공장 설비를 인수키로 지난달 기본계약을 체결, 대금을 지급했지만 북미법인은 인수를 거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미 관계자는 『북미법인을 2천억원에만 매각했어도 자금운용에 여력이 생겨 법정관리신청이라는 최악의 수단을 강구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포철과의 협상에서 삼미는 기술이전료를 포함해 7천1백94억원에 창원공장의 강관·봉강설비를 매각했으나 당초 삼미가 목표했던 매각금액은 1조원이었다. 이는 설비가 그만한 가치가 있어서라기보다 그룹이 제대로 숨을 쉬기위해 청산해야 할 부채가 엄청나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었다.
포철과의 협상이 결국 7천억원대에서 마무리됐으나 삼미는 설비매각대금을 만져보지도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매각·인수계약과 동시에 매각대금의 10%를 현금으로 받고 80%는 은행에 잡힌 담보해지용으로, 나머지 10%는 기술료 평가 이후 현금으로 정산키로 한데 따른 것. 창원공장의 봉강·강관설비는 산업은행에 약 3천2백억원, 제일은행에 약 2천8백억원의 담보가 잡혀있는 상태였다. 따라서 담보를 풀지 않고는 포철에 매각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삼미가 받기로 했던 계약금 10%마저 은행의 채무변제요구로 순식간에 없어졌다. 결국 담보해제에 따라 채무의 절대액수는 줄게 됐으나 회사 매출액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설비를 매각함으써 담보물건이 사라진 삼미로서는 은행권의 추가대출도 기대할 수 없는 형편이 됐다.
삼미특수강 관계자는 『창원공장 매각으로 총 부채가 1조원에서 3천억∼4천억원 정도로 줄게 됐지만 매출액이 1조원에서 5천억원대로 줄어 매출액 대비 10%의 영업이익을 내더라도 금융비용을 구조적으로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회생이 어렵다』고 말했다.
업계 관계자는 『철강산업에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가 정확한 수요예측을 통한 투자결정인데 삼미의 경우 무모하게 사업을 벌인 것이 화근이 된 것 같다』고 분석했다.<한상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