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로터리] 희망을 주는 정치


희망은 세상이 아무리 어렵고 각박하더라도 고통과 슬픔을 이겨내게 하는 힘이다. 오 헨리의 '마지막 잎새'는 병을 앓는 환자를 살려냈고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희망을 버리는 것을 죄악이라고 했다. 인생에서 희망이 가장 중요한 것처럼 정치에서도 가장 중요한 가치 기준은 희망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 정치가 과연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고 있는지 반문하게 된다.

최근 국회선진화법 문제로 한차례 홍역을 치렀다. 국회선진화법 대상도 아닌 감사원장 임명동의안 처리 문제로 예산안이 정쟁의 볼모로 잡혔었다. 비록 몸싸움은 사라졌지만 '선진화되지 않는' 정치관행은 여전하다. 이를 보면서 많은 국민들이 여전히 정치에 대한 부정적 평가를 내리지나 않을까 우려된다.


정치가 '3류'를 벗어나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는 정치가 되려면 자기혁신을 해야 한다. 1984년 매킨토시를 세상에 처음 내놓은 후 변화와 혁신의 상징이 된 스티브 잡스도 자기혁신에서 출발했다. 정치의 자기혁신은 우리 시대 우리 국민들의 시대정신과 요구를 읽고 그에 눈높이를 맞추는 것에서 시작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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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정신은 어떤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의 보편적인 정서와 양식을 말한다. 과거 권위주의 시대에는 자유·평등·인권·민주주의가 시대정신이었고 그 이전에는 의식주 해결, 가난 타파, 질병 극복, 산업화가 시대정신이었다. 전쟁이 발발하면 평화와 박애가 시대정신이 되고 안정적인 시절에는 사회공동체·복지가 시대정신이 된다. 정치는 바로 이러한 시대정신을 반영하는 일이다. 그래서 무엇보다 정당의 이익이나 정파적 이해관계를 떠나 '국민을 위한 정책'의 실현에 최우선의 가치를 둬야 한다.

이 과정이 때로는 포퓰리즘(인기영합)으로 비판받는 경우도 있다. 몇 해 전의 무상급식을 둘러싼 논쟁이 그렇다. 삶의 질 향상을 위한 복지 실현이 민심이 바라는 시대정신이었으나 그 방법론에 대한 차분한 토론을 하기에 앞서 인기 영합적으로 접근한 보편적 복지론이 광풍처럼 휩쓸고 지나갔다. 이후 과도한 복지정책으로 국가재정이 흔들리자 점차 보편적 복지에서 선택적 복지로 옮겨가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국회선진화법도 같은 맥락이다. 몸싸움하지 말라는 시대정신을 위해 선진화법을 만들었으나 오히려 국가정책 수행을 정지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광풍에 휩쓸려 방법론적 오류를 범한 것이다.

잠깐 휩쓸고 지나가는 것을 시대정신이라 하지는 않는다. 시대정신은 국민의 인식 밑바탕에 깔려 있는 큰 흐름이다. 그리고 그 커다란 인식의 흐름은 시대에 따라 변화한다. 이 흐름을 잘 읽는 정치가 희망을 주는 정치이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국민들의 시대정신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적시에 반영하지 못하는 정치세력은 도태되고 만다. 또 그것을 읽어도 제대로 정책으로 풀어내지 못하면 그 또한 외면받고 만다. 지금 우리 정치가 시대정신을 제대로 읽고 풀어내고 있는지 정치권 스스로 차분히 되돌아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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