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정치·외교 안보에서 경제개혁까지 주도하면서 중국 공산당의 전통인 집단지도체제를 뛰어넘어 '1인 지도체제'를 굳히고 있다는 관측이 나왔다. 집권한 지 채 1년도 지나지 않았지만 벌써 덩샤오핑 이후 최대 권력자로 부상했다는 지적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1일 시 주석이 전통적으로 총리의 영역이던 경제 분야까지 직접 챙기면서 업무영역을 넓히고 있다고 분석했다. WSJ는 최근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의 중국 방문과 지난 11월 막을 내린 중국 공산당 18기 중앙위원회 3차 전체회의(3중전회) 등에서 시 주석의 영역확대가 나타나고 있다고 전했다.
캐머런 총리는 최근 중국 방문 기간 중 경제를 담당하는 리커창 총리와 만찬을 할 예정이었지만 이 일정이 시 주석이 주최하는 연회에 참석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WSJ는 지도부의 일정에 극도로 예민한 중국에서 이러한 갑작스런 일정변화는 지도부의 역학관계 변화로 읽힌다고 지적했다. WSJ는 중국 공산당 내부관계자들을 인용해 시 주석이 총리의 역할을 축소하고 경제개혁을 챙기면서 외국 지도자에게 중국 경제를 직접 설명하고 있다고 전했다. WSJ는 시 주석과 리 총리 사이에 불화 징후는 없지만 시 주석이 중국에서 20년 가까이 유지돼온 주석과 총리의 권력분할 구도를 바꾸고 있다고 지적했다. 중국은 통상 주석이 정치·외교·안보를 담당하고 총리가 경제를 관장했다.
3중전회 이후 나온 중국의 경제개혁안에 대해서도 시 주석이 중심 역할을 하는 것으로 묘사돼 있다. 이와 관련, 신화통신은 '전면심화개혁방안 탄생기'라는 특집기사에서 시 주석이 직접 경제개혁을 주도한다고 보도했다. 특집기사에는 시 주석의 이름이 34차례나 언급됐지만 리 총리는 한 차례도 거론되지 않았다고 WSJ는 지적했다.
시 주석에 대한 권력집중은 3중전회 이후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애초 시 주석이 강력하게 추진했던 노동교화제 폐지가 보수파 원로들의 반대로 무산되는 듯했지만 3중전회에서는 최종적으로 폐지를 결정함으로써 시 주석이 원로들에 휘둘리지 않고 있다는 점을 보여줬다.
또 시 주석은 외교안보를 총괄하는 국가안전위원회를 설립해 수장에 오르면서 군·공안·무장경찰·외교부·민정부 등 국가체제 유지조직을 장악했다. 이와 함께 최근에는 경제개혁을 위해 신설된 중앙전면심화개혁영도소조 조장까지 맡았다. 신설된 중국의 양대 권력기구를 모두 장악한 셈이다.
전문가들은 시 주석이 전임인 후진타오 주석과는 차원이 다른 권력자로 올라서며 중국의 집단지도체제에 변화를 줄 것으로 전망했다. 후 전 주석이 9명의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과 집단지도체제를 구축하며 9명 중 1명이었다면 시 주석은 7명의 상무위원 중 한 명이 아닌 6명의 상무위원을 거느린 주석으로 자리잡고 있다. WSJ는 시 주석이 경제 분야까지 직접 챙기면서 1978년 경제자유화를 추진했던 덩샤오핑 이후 최대 권력자로 부상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중국 전문가인 배리 노튼 미국 캘리포니아대 교수는 "시 주석이 모든 분야의 '보스'라고 말하고 있다는 게 가장 큰 변화"라고 말했다.
WSJ는 3중전회 이후 소외되고 있는 리 총리가 이런 변화를 받아들이고 있는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혁명 원로의 아들인 시 주석이 당의 원로와 군부 등의 지지를 받고 있는 만큼 리 총리가 변화에 반발하기 힘들 것으로 WSJ는 내다봤다.
서방 관리들과 기업인들 사이에서는 중국의 이런 변화를 반기는 분위기라고 WSJ는 소개했다. 권력이 집중된 한 사람과 얘기하면 최종 결정까지 이르는 과정에서 관료주의를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