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맥주 시장 1~3위 업체 간에 서로 물고 물리는 인수합병(M&A)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이러한 인수경쟁은 글로벌 맥주 시장의 판도를 흔들 것으로 보인다.
15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세계 최대 맥주 업체 안호이저부시(AB)인베브가 2위 업체인 SAB밀러를 인수하기 위해 약 1,220억달러를 조달하는 방안을 은행들과 논의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WSJ는 "AB인베브가 일단 자금을 끌어모은 뒤 SAB밀러에 공식 접촉할 예정"이라며 관계자의 말을 인용했다.
세계 1, 2위 맥주 업체 간 메가딜에 대한 루머는 지난해부터 흘러나왔지만 구체적인 행동에 들어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만약 이번 딜이 성사되면 맥주 업계 사상 최대 규모의 M&A가 된다. 인베브가 지난 2008년 안호이저부시를 인수하면서 세운 520억달러의 인수합병 기록이 현재까지 최고다.
1, 2위 업체가 합칠 경우 세계 시장 점유율이 약 30%에 달하는 거대 맥주회사가 탄생하게 된다.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2013년 기준으로 버드와이저·호가든 등의 브랜드를 보유한 AB인베브의 세계 시장 점유율은 19.7%이며 페로니·필스너우르켈 등을 보유한 SAB밀러는 9.6%로 2위를 기록했다.
하지만 AB인베브의 M&A 시도에 SAB밀러도 가만히 앉아서 당하지는 않을 태세다. 이 회사는 3위 업체인 하이네켄을 사들이기 위해 한발 먼저 움직이기 시작했다. 최근 하이네켄에 인수제안을 했다가 '퇴짜'를 맞기는 했지만 두 번째 제안을 준비 중이라고 WSJ는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만약 하이네켄 인수에 성공하면 단숨에 AB인베브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세계 2강으로 올라서게 된다. 또 SAB밀러가 하이네켄 인수에 실패하더라도 차선책으로 칼스버그 인수를 고려할 것이라고 노무라증권이 분석했다. 앨런 클락 SAB밀러 대표는 "하이네켄은 여러 인수 대상 중 하나"라고 말한 바 있다.
글로벌 맥주 업체들이 최근 메가딜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은 선진국 맥주 시장의 성장이 한계에 봉착했기 때문이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2004년 이후 전 세계 맥주 시장은 연평균 1.3% 성장하는 데 그쳤다. M&A를 통한 성장 외에는 뾰족한 성장전략이 없는 상황이다. 대표적인 예가 AB인베브로 이 회사는 지난 10년간 M&A에 1,000억달러를 쏟아부으며 글로벌 맥주 업체들을 차례로 사냥해 세계 1위로 발돋움했다. KBC은행의 크리스 키퍼 애널리스트는 "AB인베브가 그동안 M&A로 일으킨 대출을 상당히 많이 갚았다"며 "몇년 만에 추가 합병 여력이 생겼다"고 말했다.
특히 맥주 시장에서 중산층이 급성장하고 있는 아프리카·아시아 등 신흥국에서 지배력이 강한 업체와의 합병은 큰 기회다. 멕시코와 나이지리아 등 아프리카에서 점유율이 높은 하이네켄은 해당 지역 매출이 적은 SAB밀러에 매력적인 매물이다. 페루와 콜롬비아 등 브라질 외 중남미에서 지배력이 높은 SAB밀러는 모태가 브라질 기업인 AB인베브의 약점을 보완해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 밖에 미국의 금리인상 전에 저금리 막차를 타려는 점도 맥주 업계의 메가딜을 촉발하는 요인으로 분석된다. 필립 고함 모닝스타 애널리스트는 "시장 구성상 AB인베브 M&A 역사의 최종 타깃은 SAB가 되는 게 당연하다"며 "다만 인수전이 가열돼 인수비용이 오를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