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세계의 사설/4월 16일] 부실한 EU 헤지펀드 규제안

유럽연합(EU)의 헤지펀드 규제안은 전세계에서 최초로 시도되는 것이다. 규제안 논의는 EU 의회의 사회주의 성향 그룹과 조제 마누엘 바호수 EU 집행위원장의 밀실 회담에서 이뤄졌다. 당시 바호수 위원장이 재선을 준비하던 시기라는 점에서 이 법안의 정치적 의도를 엿볼 수 있다. 불순한 의도에서 비롯된 이 규제안은 예상대로 많은 모순을 담고 있다. '금융시장 안정'이라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사실은 엉뚱한 대상에 칼을 들이댄 것이다. 규제안을 두고 몇 달째 옥신각신하고 있지만 아직 최종 합의안을 도출하지는 못했다. 이 과정에서 규제안의 핵심조항들은 대부분 배제됐다. EU는 규제안에서 헤지펀드들의 차입(레버리지) 규모에 상한을 두는 조항을 포기했다. 또한 헤지펀드들이 유럽 대형은행들에만 자금을 예치하도록 하는 보호주의적 성향의 조항도 사실상 효력을 잃게 됐다. 반면 헤지펀드들이 투자의 목적과 전략을 공개하도록 규정한, 큰 의미가 없는 조항들은 남아 있다. 이 또한 헤지펀드들에 부담을 줄 수는 있겠지만 업계 전반에 근본적 변화를 끼칠 정도는 아니다. 대신 헤지펀드들은 그 대가로 EU 내 어느 곳에서나 사업할 수 있는 승인권을 얻게 될 것이다. 전문가들은 EU가 헤지펀드들에 오히려 기회를 줬다고 지적한다. 헤지펀드들은 EU의 말을 잘 듣기만 하면 보수적 투자자인 독일ㆍ프랑스의 연금펀드들조차 고객으로 맞을 수 있게 된다. 승인권 대상을 둘러싸고는 지금까지 논란이 뜨겁다. 프랑스는 비(非)EU 기반의 헤지펀드들에도 사업 승인권을 주되 규제대상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입장이다. 타협안은 EU 외부의 헤지펀드들이 EU의 규정과 기준을 잘 준수하면 사업 승인권을 주자는 내용이다. 이 기준은 철저한 납세, 돈세탁 금지, 정보교환 등이다. 이들 헤지펀드들은 어느 정도의 규제ㆍ감독을 감수하면 EU 시장에 진출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EU가 헤지펀드 규제안에서 이 정도의 결과를 얻는다면 일정한 성과를 냈다고 볼 수 있다. 불순한 의도에서 시작된 규제안이 상당 부분 중립성을 찾게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전히 부실한 규제안은 법제화를 추진할 정도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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