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석유화학:5/석유화학의 역사(이야기 산업)

◎석유는 140년,유화제품은 50년에 불과/합성수지 성형가공 52년 「락희」 첫시작영화 「자이언트」를 보면 주인공 제임스딘은 원유를 발견해 부자가 된다. 주인공은 열악한 장비로 원유를 시추하고 검은 원유를 뒤집어 쓴 채 사랑하는 여인의 집을 찾아간다. 이 영화가 만들어진 것은 50년대. 불과 40년전의 시추모습과 지금을 비교하면 시추와 정제기술이 얼마나 비약적인 발전을 했는지 알수 있다. 오늘날 세계 에너지의 절반이상을 석유에 의존하고 있지만 그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석유역사는 1백40년에 불과하며, 이를 이용해 화학제품을 만든 것은 불과 50년전이다. 정유산업의 시초는 1859년 미국 펜실베니아주에서 에드윈 L·드레이크라는 사람이 기계적으로 시추한 이른바 「드레이크의 샘」이다. 우리나라에서는 1880년 고종 17년 궁중에서 석유를 등화용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국내 최초의 정제시설은 1930년 연산 6천배럴 규모의 원산 정유공장이다. 반면 석유에 함유된 탄화수소를 원료로 하는 유화공업은 1920년 미국 스탠다드 오일사가 정유공장에 부생되는 프로판과 프로필렌을 이용해 이소프로필 알콜(IPA)을 합성한 것이 효시이며, 오늘날의 NCC(나프타 분해공장) 산업으로 발전이 시작된 것은 2차 대전후다. 국내에서는 미국 텍사코의 중질유부문 산화공정을 도입, 지난 61년 4월 가동된 충주비료공장이다. 이 공장은 화학비료공장이지만 우리나라의 장치산업, 즉 최초의 근대식 자동연속 조업장치 공장으로 평가되고 있다. 석유화학산업의 최종단계라 할 수 있는 합성수지 성형가공은 지난 52년 락희화학(현 LG화학)에 의해 처음 시작됐다. 국내유화공업은 이처럼 선진국에 비해 30년 이상 뒤졌지만 다시 30년이 흐른 오늘날에는 NCC 생산규모가 연간 5백만톤으로 세계 5위의 화학대국으로 성장했다.<민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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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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