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테이퍼링(양적완화 축소),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등이 내년 아시아 지역 국가들의 경제를 지배할 핵심 이슈로 꼽혔다. 이와 함께 태국 등에서 반정부시위가 벌어지는 가운데 아시아 국가들에서 연이은 선거와 장성택 전 북한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의 처형 등의 과정에서 촉발된 북한의 정치적 불안정도 역내 안정을 해칠 수 있는 리스크로 꼽혔다.
전세계 각국의 리스크 평가로 유명한 영국 연구기관인 이코노미스트인텔리전스유닛(EIU)이 내년에 아시아를 지배할 핵심 이슈를 정리해 최근 발표했다.
EIU는 연준의 테이퍼링으로 글로벌 자금들이 미국·유럽 등 선진국으로 회귀하면서 아시아 신흥시장의 자산거품이 꺼지는 현상이 가속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특히 최근 몇년새 외국인 자금이 몰리며 가격이 급등한 홍콩·호주·싱가포르 등의 부동산시장이 침체 위기를 맞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자산가격 하락은 말레이시아·태국 등 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급격히 늘고 있는 아시아 국가들에 시한폭탄이 될 가능성도 있다고 덧붙였다.
정치불안과 잇따른 선거도 아시아 각국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고 EIU는 전망했다.
내년 상반기 6개월 동안 수억명이 넘는 인구를 거느린 아시아 거대 민주주의 국가들이 잇따라 총선을 치른다. 선거는 종교·스캔들·경제난으로 얼룩진 이들 국가에 리더십을 재확립할 기회지만 동시에 극단적 분열과 혼란에 따른 경제파탄으로 이어질 수 있는 잠재적 뇌관이기도 하다. 방글라데시는 1월, 인도네시아와 인도는 각각 4월과 5월에 총선을 실시한다. 이들 국가에서는 경제난과 부패 스캔들, 종교갈등이 뒤엉켜 정국혼란이 예고돼 있다고 EIU는 지적했다. 특히 방글라데시는 최근 야권의 총선 보이콧과 야당 지도자의 사형 등이 겹치며 위기가 급속도로 가시화하는 형국이다.
태국·미얀마·필리핀 그리고 북한에서는 이미 현재진행형인 정정불안이 투자자들의 위기감을 키우고 있다. EIU는 "잉락 친나왓 태국 총리는 반정부세력을 진정시키고자 2월 총선을 예고했지만 태국의 만성적 권력투쟁이 선거를 통해 해결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고 우려했다. 개혁개방을 약속한 미얀마와 필리핀은 여전히 소수민족들의 분리독립 투쟁이 이어지고 있으며 장성택의 처형과 북한의 정세급변은 한국 경제를 위협하는 심각한 외부요인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달 중순 태국·인도네시아·필리핀 등 이른바 팁스(TIPs) 국가들이 정정불안·금리상승·저성장·환율상승이라는 4중고에 시달리고 있다며 내년에 이 같은 악재가 한꺼번에 터질 수 있다고 우려한 바 있다.
한편 미군이 아프가니스탄에서 본격 철수하는 2014년은 미국의 관심이 동남아시아 일대로 옮겨가면서 무역·안보 문제 등 이 지역 현안을 놓고 미국과 중국 간 알력이 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남중국해에서 중국과 영토분쟁을 겪는 베트남·필리핀은 미국과의 협력을 적극적으로 추진할 공산이 크다고 EIU는 전망했다. 전문가들은 태풍 하이옌이 상륙할 당시 미국이 필리핀에서 적극적인 구호활동을 벌인 것도 미군의 재배치 협상을 유리하게 끌고 가기 위한 포석이었다고 주장하고 있다.